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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눈빛의 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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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하는 내내 배역에 빙의했다"는 영화 '아수라'의 정우성

영화 '아수라'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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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의 암울한 세계 보여주고 싶어 촬영장 밖에서도 그대로 감정 유지"
"액션 장면에서도 속임수나 기교 배제…둔해 보이더라도 더 리얼하게 찍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살기가 서려 있는 눈. 가뜩이나 피범벅이 된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분이 차오르는데 좀처럼 폭발하지 못한다. 또 다시 욕설이나 퍼붓고 만다. 그래서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영화 '아수라'에서 배우 정우성(43)이 연기한 인물 한도경이다.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 강력계 형사지만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뒷일을 처리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은 박성배를 잡으려고 한다. 한도경은 두 거물 사이에 끼어 이리저리 치인다.
정우성은 이 긴 호흡을 연기만으로 끌고 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한도경이 되기로 결심했다. "인물을 이해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시나리오의 암울한 세계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촬영장 밖에서도 감정을 유지해야 했죠. 매일 인상을 쓰고 다녔던 것 같아요. 액션 연기를 할 때도 속임수나 기교를 최대한 배제했고요. 다소 둔해 보이더라도 스트레스가 움직임에 묻어나길 바랐어요."

배우 정우성[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성[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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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을 27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카페 '웨스트19'에서 만났다. 얼굴은 몰라보게 야위었다. 여러 가지로 고생이 심했는지 눈이 퀭하게 꺼지고 볼도 쑥 들어갔다. 그는 촬영 기간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겨우 눈을 붙여도 잠꼬대를 응얼거렸다. "액션 신을 많이 찍어서 육체적으로 고되었지만 한도경으로 빙의돼 받은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어요. 잠을 자면서 이를 가는 버릇이 생길 정도였죠. 그렇게 며칠을 지내니까 '이렇게 피곤하게 살면서까지 연기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로 영화 '더 킹'을 촬영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을 거예요."

이를 악문 오기는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자동차 추격 신에 집약돼 나타난다. 박성배와 김차인에게 치여 만신창이가 된 한도경이 외국인 깡패들에게 권총을 뺏기자 무섭게 뒤쫓는다. 김성수 감독(55)은 이 신을 롱 테이크(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로 담았다. 카메라를 자동차 앞 유리의 와이퍼로 설정하고 격렬한 충돌을 이리저리 보여준다. 한도경은 타이어에 펑크가 나는데도 기속 폐달을 힘껏 밟으며 깡패들을 제압한다. 이때 정우성은 자신과 한도경의 억눌렸던 분노를 한꺼번에 폭발시킨다. "한도경의 심리에 변화가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중요한 신이에요. 그런데 너무 한도경에 빠져있어서 욕설을 많이 했나 봐요. 김성수 감독이 무전기로 그만해달라고 사정하더라고요. 고취된 기분을 멈추지 못하고 바로 되받아쳤어요. '자꾸 나오는데 어떡하라고요.'"
영화 '아수라'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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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이 극 중 인물에 동화돼 연기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시도한 작품은 김 감독의 '비트(1997년).' 촬영장 밖에서 방황하는 주인공 이민처럼 지냈다. 비틀즈의 'Let it be'를 들으며 배우로서 정하지 못한 방향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는 인물을 온전하게 담는 방법이 그것뿐이었어요. 피곤해도 인물을 깊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죠. 그런데 촬영을 마치고 쫑파티를 갔는데 혼란스럽더라고요. (인물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해) 길을 잃은 것 마냥 비틀거렸어요."

그는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다. 많은 이들이 말보로 레드 담배와 지포라이터로 청춘을 불태웠다. '데니스 로드맨'의 얼굴을 새긴 티셔츠는 금세 동났고, 오토바이 질주 신은 아직도 회자된다. 정우성은 각종 광고에 출연해 영화 속 이미지를 재현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배우로서 인정을 받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곽경택 감독(50)의 '똥개(2003년)'에서 바보 같은 차철민을 연기하는 등 변신을 거듭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나름대로 여러 인물에 도전했지만 계획한 것을 보여주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나이를 먹고 조급해지면서 위기도 맞았던 것 같고요.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서 겨우 고비를 넘긴 것 같아요. "

영화 '아수라' 스틸 컷

영화 '아수라'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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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은 아수라가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기억되길 바란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긴 대사에서 발음이 엉키는 등의 약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시종일관 암울한 분위기를 그리지만 갈등이나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할 만한 장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관객에게 인물이 다소 평면적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김 감독을 신뢰했다. 자신을 스타로 만든 감독이기에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을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출은 누구보다 시나리오를 잘 이해하는 이가 고찰한 결과잖아요.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성수 감독이 시키는 대로 치열하게 찍고 싶었어요. 다른 배우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됐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만족하는 것 같아 기뻐요. 조만간 제가 메가폰을 잡을 때도 이런 결과가 나왔으면 해요. 고집스러운 거요."

막바지 시나리오 작업이 한창이라는 정우성이 만드는 작품은 어떤 색깔일까. "써놓고 보니 김성수 감독과 비슷한 면이 있더라고요. 기승전결을 따르기보다 다양한 인물들을 한데 모아놓고 하나의 상황에 빠뜨리는 구조죠. 아직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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