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나합'이야기 -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건축비 뜯으러 나합을 찾아왔는데
김좌근은 한때의 바람기로 양지홍을 대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진짜 후실로 대해주었다. 후실 그 이상이었다.
그녀가 ‘나합’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시비를 붙은 사람은 흥선대원군으로 알려져 있다. 세간에 도는, 나합에 관한 소문은 심각했다. 비단을 바치고 양주 수령자리를 줬다는 이야기, 젊은 미남자를 보면 그냥 벼슬을 줬다는 풍문도 있었다. 지방 수령의 임면권이 모두 김좌근에게 있었기에 우선 나합에게 뇌물을 바쳐야 통과된다는 것이 당시 비공인 ‘정설’이었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청수동 김좌근 별장으로 찾아가 나합의 일을 꺼내면서 궁궐 중건비 10만냥과 고정의 가례비 10만냥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 무렵 나합과 대원군이 나눈 대화가 인구에 회자된다.
“자네를 세간에서 나합이라 부르는 것을 알고 있는가? 김합이 정승이라고 그 첩이 정승이란 말인가? 어찌 하여 이런 별칭이 붙었는지 설명해보게나.”
“나으리는 세간의 소리만 들었지 그 한자가 무엇인지 살펴 보시지 않은 듯 합니다. 나합(羅閤)이 아니라 나합(羅蛤)이라고 비웃는 것입니다. 나주의 정승이 아니라, 벌린(羅) 대합조개(蛤)라는 말입니다. 내 비록 첩으로 들어와 살아도 허물없이 살고자 애썼고 공정하고 어질게 사람을 대하고자 별렀습니다만, 세상은 나를 오직 더러운 계집년으로만 밀어붙이니 억울하고 분하옵니다.”
대원군은 당차고 야한 대꾸에 움찔하였다.
“내 처소에 덤벼든 자객이 안동김문이 시킨 일임을 실토하고 그대 이름을 발설한 바가 있는데?”
그러자 나합은 소리 내어 웃었다.
“나으리도 참 우습습니다. 역모(逆謀)라는 것도 이익이나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고작해야 정승의 애첩으로 사랑받고 사는 것이 이미 충분한데 무엇하러 다른 일을 생각하겠습니까? 제사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천하의 천덕꾸러기 첩이 무슨 역모를 하겠습니까?”
이 말에 대원군은 실소를 터뜨리며, 돈을 챙기고는 물러갔다고 한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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