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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삼풍과 지진, 그리고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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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4월, 삼풍백화점 5층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균열은 심해졌다. 안전검사 실시 결과는 놀라웠다. "건물 붕괴 위험이 있다! "하지만 백화점은 영업을 멈추지 않았다. 6월28일에는 백화점 옥상 바닥이 서서히 내려앉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음날, 식당가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고 바닥이 주저앉으며 식탁이 기울어졌다.

 삼풍백화점 임원회의가 열렸다. 당장 영업을 중단하고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은 묵살됐다.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난 이후 공사를 하기로 결정됐다. 그날 회의에서는 "하루 매상이 얼만데…"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문제의 현장에는 칸막이를 쳐 고객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

 붕괴가 시작될 것 같다는 시설 부장의 보고를 받자마자 경영진은 안내 방송도 하지 않은 채 황급히 백화점을 빠져나갔다. 건물은 불과 20초 만에 무너져내렸고 악몽처럼 500명 넘는 목숨이 사라졌다.
 "여보쇼! 무너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 피해도 되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사고 이후 서초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온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이 한 방송사 취재기자에게 내뱉은 말이다. 당시 이 기자는 보도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자신의 재산을 등치시키는 금전만능주의적 사고의 편린을 보게 된다"고 했다.

 탐욕이 눈을 멀게 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에는 그렇지 않지만, 수많은 인명을 앗아갈 수 있는 재난의 위험은 무시한다. 탐욕에 눈이 먼 한 사람이 돈과 권력을 쥐면 얼마나 무시무시해질 수 있는지도 잔인하게 각인시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권력형 뇌물 사건만 봐도 그렇다. 줄줄이 쇠고랑을 차도 눈앞에 돈이 놓이면 학습효과도 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한반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는 얘기는 그동안 숱하게 들어온 바다. 그리고 실제 가공할 지진이 발생했고 여진이 이어진다. 지진과 원전은 공존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탈핵보다 이른바 '원전 마피아'의 목소리가 컸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정말 다시 생각해야 될 때가 아닐까. 원전이 경제적이라는 주장을 내세우지만 향후 폐기 과정에 드는 경제적ㆍ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충분한 내진 설계를 했다는 얘기도 답은 아니다. 이른바 '지진 대국'이라는 일본은 내진 설계가 충분치 않아서 참사를 빚었을까. 자연의 변화를 인간의 예측 범위 내로 한정하기에는 핵의 위력이 너무 엄청나다. 우리는 들이지 말아야 할 것을 들였는지도 모른다.

 한 생명의 소멸은 한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생명을 고려할 때 '기우'란 없다. 금이 갔을 때, 물이 샐 때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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