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토론을 쓰기 위해서는 본회의 개의 전에 신청서가 제출되어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신청서를 받아간 사이에 본회의가 개의해 신청서를 제출할 시점을 놓쳤기 때문이다. 대신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총리 및 장관들이 장시간 답변을 한다거나,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이유로 정회를 요구하는 등 변형된 형태의 지연작전은 펼쳐졌다.
새누리당이 무제한토론 카드를 꺼내 들었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김 장관 해임건의안과 같은 인사 관련 사안에 필리버스터를 활용할 경우 19대 국회의 선례(先例)와 배치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유는 현재와 같은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는 2013년 11월28일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때, 이 같은 관례를 새누리당 출신의 강창희 국회의장(당시에는 당적이 없음)이 주장, 관철했기 때문이다.
당시 황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당시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요구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야당의 요구와 관련해 "인사 관련 안건에 관해서는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 국회의 오랜 관례"라면서 즉시 표결에 부쳤다. 당시 다수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이 때문에 큰 무리가 없이 황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가결처리 할 수 있었다.
만약 이 같은 관례가 새누리당에 의해 깨져, 인사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무제한토론이 허락된다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여당에서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선례가 번복될 경우에는 어느 정부에서든 향후 인사 관련 사안은 필리버스터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가령 국무총리 등 임명동의안은 국회본회의를 거쳐야 한다. 만약 이 같은 임명동의안마다 야당이 필리버스터 등을 활용할 경우 국정운영은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