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항상 어떤 기온에서도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면서 몸을 적응시킬 수 있는 항온동물, 즉 '포유류'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요즘처럼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몰아치면 반드시 탈이 난다.
인간의 정신도 육체와 마찬가지다. 거센 심리적 충격·스트레스가 연이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치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이라는 정신적 방어기제가 작용하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이 몰아치거나 강도가 센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인간의 마음은 어김없이 병고에 시달린다. 심리학적인 용어로 '트라우마'라고 한다. 트라우마를 없애려면 '심리적 반신욕'이 필요하다. 주변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이겨낼 수 있도록, 잊을 수 있도록 그대로 놔두고 도와 줄 것이 있으면 도와줘야 한다. 이게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들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잊어야 사는 사람들, 잊기 위해 치를 떠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아직도 안 잊었냐"고 괴롭힌다. 개인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그렇다.
격하게 동감한다. 과제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좀 더 성숙해지는, 시스템화하고 정교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가장 절실한 것은 치유의 리더십이다. 갈등·배제·독선의 리더십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민중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달래주고 치유해주는 리더십이 간절한 때다. 성장이냐 분배냐, 경제민주화냐 복지냐, 햇볕정책이냐 안보냐 말도 많다. 그러나 한국인들 모두에게 따뜻한 반신욕 같은 정치를 제공할 수 있는 치유의 리더십이라면 누구라도 환영이다.
김봉수 사회부 차장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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