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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카메오에도 '클래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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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은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1925년 '쾌락의 정원'에서 시작하여 1976년 '패밀리 플롯'까지 54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끊임없이 영화에 대해 사유하였고 영화를 통해 그의 사유의 방식을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히치콕은 지휘자가 악보를 암보한 뒤 지휘를 하는 것처럼 자신의 작품을 완벽히 구상하고 영화를 찍었다. 그는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여다보거나 대본을 펼쳐보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대로 정확하게 필요한 장면만 촬영했기 때문에 영국에서 그를 모셔온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압력을 넣어 자신들의 입맛대로 영화를 수정하려 해도 히치콕의 의도와 다르게 편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히치콕의 영화는 공포와 죄의식을 바탕으로 욕망과 도덕 간의 갈등, 성의 억압과 왜곡,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불안이라는 잠재의식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이는 심리학자와도 같은 날카로운 통찰과 정교한 내러티브, 그리고 영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예술매체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의 117번째 생일인 8월13일 한국에서 특별전이 열렸다. '히치콕 특별전 올 어바웃 히치콕'에 무더위를 뚫고 영화광들이 몰려들었다. 서울에서 시작한 특별전은 내달부터 전국에서 순회 상영한다. 영화팬과 영화감독 그리고 평론가까지 만족시키는 거의 유일한 감독인 히치콕의 특별전이 그가 태어난 날에 한국에서 열린 것은 그의 열렬한 팬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감격적인 일이다.

이번 특별전에는 히치콕을 대표할 만한 영화 네 편이 상영됐다. 관음증을 모티브로 영화는 결국 보는 행위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이창',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탐구하는 '현기증', 그 공포를 어떻게 느끼는가를 보여주는 촬영의 교본 '사이코', 사회적 집단 무의식을 보여준 '새'를 상영했다. 교과서적인 선택이다. '이창'과 '현기증'은 누구나 인정하는 걸작이고 '사이코'는 가장 히치콕스러운 작품이며 '새'는 히치콕의 야심을 읽을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 54편 모두를 상영하면 좋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고 좀 더 많은 히치콕의 영화가 상영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실제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을 일치시킨 '로프' 후기 걸작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히치콕 미학의 절정 '오명' 등이 빠진 것은 유감이다.
특히 '오명'을 스크린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은 정말 아쉽다(때로는 교과서 밖에 답이 있다). '오명'은 파멸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독약처럼 관객을 빨아들이는 영화이다. 5분에 걸친 키스신은 치명적으로 매혹적이며 알리사를 부축하고 데블린이 계단을 내려와 문 밖으로 나가는 그 긴 장면은 보고 또 봐도 탄성을 자아낸다. 히치콕 이후 영화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면 중 히치콕에 버금간다고 생각되는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데뷔작 '듀얼'과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의 몇 장면 정도이다.

이런 짧은 글 따위를 쓰면서 영화에 대해서, 히치콕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 말 만큼은 자신있게 할 수 있다. '이창' '현기증' '사이코' '새'를 안 봤다면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고 '오명'을 보지 않았다면 히치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다.

PS. 영화마다 카메오가 넘쳐난다. 언제부터인가 카메오가 영화의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본 카메오 중 베스트는 딱 두개. 하나는 히치콕의 '구명보트' 중 다이어트에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비포 앤 애프터로 찍어 신문광고로 출연한 장면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우디 알렌의 '애니홀'에 나온다. 극장 앞에 늘어선 줄. 한 남자가 마셜 맥루한에 대해 아는 척을 하자 못마땅한 우디 알렌이 직접 맥루한을 데려와 아는 척하는 남자에게 망신을 주는 장면이다.

임훈구 편집부장 stoo4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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