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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공부의 인내심을 밝힌 말, 통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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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말들의 고고학' - 옛 글을 읽고 말이 안된다 싶을 때, 그냥 덮지 마라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통효'라는 오묘한 말이 있다. 여명이 밝아오듯 무지의 어둠 속에서 앎이 가만히 밝아오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리(文理)가 트이는 방식을 옛사람들은 저런 말로 표현했다.

퇴계 이황은 이런 말을 했다.
"성인들의 말씀을 읽다가 여러번 되짚어 살펴도 통효하지 않는 곳이 있으면, 모름지기 성인이 내린 가르침은 반드시 누구나 알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을 취하여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라. 성인의 말씀은 저러한데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면 이는 나의 노력이 어설픈 탓이다. 성인이 어찌 알기 어렵고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를 속이겠는가. 성인의 말씀을 더욱 믿고 마음을 비워 구하면 견득(見得)하는 곳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퇴계 이황의 초상화.

퇴계 이황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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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聖經 反諸己 有不通曉處 須思聖人垂訓 必就人可知可行者立言
독성경 반제기 유불통효처 수사성인수훈 필취인가지가행자입언
而聖賢之言如彼 我之所見如此 則是自我著力不精之故也
이성현지언여피 아지소견여차 즉시자아저력부정지고야

聖賢豈以難知難行者 欺我哉 益信聖賢之言 而虛心求之 則將有見得處
성현기이난지난행자 기아재 익신성현지언 이허심구지 즉장유견득처

퇴계의 깊고 정밀한 학문의 비밀을 담고 있는 듯한 이 구절.

성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성인이 대충 말했거나 잘못 말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그 말의 본질에 닿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그의 공부를 집요하고 투철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성인에 대한 이 열정적인 신뢰야 말로, 스스로를 성인의 격에 이르게 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번역서를 읽을 때 그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이어서가 아니라 번역이 그 진의(眞意)를 놓쳤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자로 된 옛 책의 번역도 그렇고, 영어를 비롯한 서양 언어로 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번역이란, 자구(字句)를 충실히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쓴 사람의 뜻을 읽어내는 것이 번역의 핵심이다.

아무리 어려워보이는 까다로운 글이라도 그 착안을 이루는 생각은 명쾌하고 단순한 경우가 많다. 그 논지를 풀어내고 다가가게 하는 것이, 소통을 중개하는 번역이 갖춰야할 미덕이다.

해석되지 않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뭔가 아리송한 것을 얼버무리거나 놓친 채 지나가는 것은, 공부하는 태도가 아니다. 한 점 모호함이 없는 정밀하고 투철한 읽기의 쾌감. 퇴계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통효.

머릿속이 환해지는 공부의 매력을, 그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분이 거짓말을 하고 1천년 동안 사람들을 속여왔을 가능성이 큰가. 아니면 자네가 그 분의 진실을 이해못했을 가능성이 큰가. 이런 설득력으로 열정적인 공부를 권장한 것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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