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이 전 부회장의 장례일정 등 환경 변화를 직시하면서도 총수일가를 겨냥한 수사의 고삐를 놓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핵심 인물의 신상 변동이 실제 의사결정권을 거머쥔 총수일가의 형사책임을 흐릴 수 없다는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총수일가를 집중적으로 보는 수사로, 핵심 전문경영인에 대한 줄소환 역시 최종 책임은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빈 회장 등으로 귀결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은 인수·합병 과정을 이용한 총수일가 수혜 집중 및 거액 부정환급 의혹, 끼워넣기·일감몰아주기 및 지분·자산 거래 등을 통한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 롯데건설 등 계열사의 거액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았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자산관리, 신 총괄회장의 총수일가에 대한 지배지분 이전 과정에서 불법 의혹도 뒤따랐다.
검찰은 계열사 경영부터 총수일가 지원까지 그룹 내 대소사를 관장한 정책본부를 딛고 총수일가로 겨누기에 부족함 없는 수사를 진행해 왔다는 입장이다. 그간 정책본부 주요 인사들은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부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 수사는 사람을 압박하거나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로부터 탈피해왔다"면서 "물적 증거가 많이 확보돼 있다"고 전했다. 당초 계획보다 속도에 완급을 둘 뿐 신동주·동빈 형제나, 서미경 모녀의 검찰 출석이 마냥 미뤄지지는 않으리란 전망이다.
롯데그룹 총수일가 비리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공개국면을 맞은 뒤 검찰 밖 복마전 양상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 재판을 앞두고 일견 유리할 것 없는 치매약 복용 사실이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서 흘러나온 점, 검찰 출석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부회장이 유서에 담았다는 '2015년 초까지 모든 결정은 신 총괄회장이 했다'는 표현 등은 결국 형사책임의 가장 '윗선'과 맞닿은 대목이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이사회 장악을 두고 전개돼 온 마당에 검찰 손속이 롯데그룹 경영에 여파를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74·구속기소)의 배임·횡령, 뒷돈수수 혐의 관련 총수일가 개인회사 대표가 구속 기소됐지만, 수사 협력 등을 이유로 한 검찰의 이례적인 집행유예 구형으로 1심 선고와 동시에 풀려난 바 있다. 검찰은 계열사 경영비리 수사를 위해 롯데물산 등 일본롯데의 지배구조 및 경영·회계 자료 확보에 나섰다가 주주반대로 무산되자, 일본 현지 사법당국을 통한 형사공조와 더불어 그룹 내부 협력을 통해 관련 자료 일부를 확보해 왔다.
다만 롯데케미칼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롯데홈쇼핑의 사업권 부정 재승인 무마 로비, 롯데건설의 수백억 비자금 조성 등 '불법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수사는 고배를 마실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자금 조성 수사는 계속 진행되지만, 조성·운용 관련 정책본부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에 대한 수사는 당분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법원은 앞서 로비 정황이 불거진 허수영 롯데케미칼 대표(65·사장), 강현구 롯데홈쇼핑 대표(56·사장)에 대한 구속 수사를 잇달아 불허한 바 있다. 검찰은 수사 특성상 로비 의혹의 경우 핵심 관계자의 ‘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고충을 수차례 호소해 온 바 있다. 수사 초기부터 주목받던 제2롯데월드 로비 의혹도 본격적인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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