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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냉면과 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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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을지로와 충무로 일대는 냉면의 격전지다. 전통의 우래옥을 필두로 을지면옥, 필동면옥, 평래옥 등이 굳건히 평양냉면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고 이에 질세라 중부시장 건너편에선 흥남집과 오장동함흥냉면 등이 입맛 돋우는 새콤한 양념 앞세워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老鋪)인 데다가 여름철 점심 시간이면 더위도 시름도 잊고 싶은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이른바 '핫플레이스'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찜통 더위 속에서도 이 냉면집들 앞에 길게 줄을 선 광경은 그 맛 모르면 이해가 안 돼 고개 절레절레 흔들지만, 아는 사람은 입맛 다시며 고개 주억거리게 하는 진풍경이다.

 그 모습 보고 있노라면 무더위 속 오랜 기다림 이기고 결국 맛본 냉면은 더욱 시원하기 마련이라 계속 찾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렵사리 받아 든 소중한 냉면 한 그릇이라 그런지 면 타래 좀 풀어봤다는 마니아들의 자기주장은 좀 남다르다. 물냉면이나 비빔냉면에 대한 기호 확실하고 선호하는 냉면 가게는 당연히 저마다 다르다. 게다가 각론으로 들어가선 육수나 양념을 어떻게 만드는지, 면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고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등을 따져 먹는다. 가위의 사용 및 식초와 겨자의 첨가 등 먹는 방식에 있어서도 주장이 뚜렷하다. 섣불리 먹으면 '초딩입맛' 취급받기 십상이지만 제대로 꿰고 있으면 곧바로 고수로 인정해주는 음식이 냉면인 것이다.

 그렇다고 고수의 반열에 오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 듯 하다. 인터넷 뒤지면 각종 정보 넘쳐나는데 여름이면 이거 안 하면 다들 몹시 섭섭한지 방송, 신문 등에서도 앞다퉈 냉면을 특집으로 다룬다. 내용을 보니 평양냉면은 처음엔 밍밍하지만 결국 그 맛에 중독된다고들 한다. 과연 그런건지 몇 번 먹으며 맛을 들이니 또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이제 어엿한 고수가 된 건가 괜스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그랬다. 냉면을 먹을 때 반드시 '선주후면(先酒後麵)'하리라 나름 원칙도 세웠다.

 하지만 그러면서 늘어난 것은 음식에 대한 식견이라기보다 참견이었다. "아니, 이 집에서 물냉면을 안 먹고 비빔을 먹다니요"하며 달뜬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게 됐고 "냉면을 가위로 자르다니"하며 질색하게 됐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면서. 독일의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이 문제에 대해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You are what you eat)"이라고 했다. 그가 먹는 음식이 그가 누구인지를 설명한다는데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라고 간섭하는 것은 음식에 대한 참견을 넘어 인생에 대한 참견 아니었을까 싶었다.
 얼마 전 평양냉명의 성지로 불리는 의정부 평양면옥에서 본 장면.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한 중년 남성은 물냉면이 전문인 집에서 굳이 비빔냉면을 시켜서는 오른손으로 면을 비벼 입에 넣으며 왼손으로는 가위로 그 면을 자르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자르고. 그렇게 자르며 먹다 보니 어느새 면은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할 정도가 됐다. 맛을 떠나 연신 가위질 하면 먹는 것은 좀 위험하다 싶었지만 어쩔 수 있나. 그렇게 먹는 게 바로 그 사람인데.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냉면뿐만이 아니다. 가뜩이나 더운 날 어떤 음식으로 몸을 보할 것인지도 불법이 아니라면 자기 인생 살 듯 알아서 할 일이지 남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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