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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옆구리에 대한 마지막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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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아들로서 인간을 사랑한 자가 적지 않다. 성부의 외아들 예수처럼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도 세상을 사랑했다. 환웅은 오른쪽 옆구리가 무사하다. 대신 그는 곰을 여자로 만들어 아들 단군을 낳게 하는 놀라운 테크닉을 사용한다. 우리의 신화 속에 옆구리 출신은 아리영(娥利英) 부인뿐이다. 그녀는 계룡(鷄龍)의 옆구리에서 태어나 훗날 신라 시조왕 혁거세거서간의 아내가 된다. 아무튼 어디에나 옆구리는 있다.

 용(龍)의 이미지는 동서양에서 아주 다르다. 서양에서는 몹시 흉악한 존재라서 영웅들의 토벌 대상이다. 동양에서는 매우 영험한 동물로서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한다. 용꿈을 꾸면 복권을 사야 한다. 뭐든지 '용'이 들어가면 고귀해진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고 하지 않던가. 역린(逆鱗)이란 임금의 분노를 일컬으니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용이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하느님이든 프로메테우스든 인간을 만든 재료는 흙이라든가, 옆구리에 대한 빈번한 암시와 같은 설화ㆍ전설과 이미지의 빈번한 일치는 '집단 무의식' 또는 '원형 무의식'을 뒷받침한다. 칼 융(Carl Gustav Jung)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처럼 무의식에 주목한 심리학자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개인적인 세계로 이해한 반면 융은 개인의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나누어 이해했다.
 각 개인의 정신이 아무리 독특해도 다른 개인의 정신과 동일한 부분을 많이 지니고 있다. 모든 개인의 정신이 공통의 하부구조 혹은 토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융은 이것을 집단 무의식이라 부른다. 그리고 집단 무의식의 깊은 곳에는 인류 공통의 기억이나 이미지가 잠재해 있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사람들이 대개 뱀을 싫어하는 이유는 인류의 조상이 파충류에게 쫓길 때의 기억이 유전자에 의해 마음 깊숙한 곳에 전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용의 이미지도 바로 이 파충류에 대한 공포에서 오지 않았을까? 용은 그렇다면 '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거대한 육식공룡의 변화된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융은 처음 간 장소에서 전에 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기시감(旣視感)도 집단 무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와 프로메테우스, 역사와 신화 속 두 주인공의 옆구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혹시 그들의 옆구리를 통하여 인간의 근본에 속한 비밀을 넌지시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옆구리, 특히 오른쪽 옆구리는 중요한 신체기관인 간(肝)이 들어 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성경에서 하느님이 아담을 잠들게 한 뒤 그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이브를 만들고 아담의 아내로 삼았다는, 바로 그 갈비뼈가 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토마스가 손을 넣어 확인한 그 곳, 예수의 옆구리. 프로메테우스가 체험한 영원한 고통의 표상. 그러나 영원히 새롭게 돋아나는 살점을 덮은 곳.

 그곳은 보지(묻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와도 같은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그곳은 인간이 영원히 알아서는 안 될, 금단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제 살점(세포)을 떼어내 스스로를 복제하려 든다. 옆구리는 신들의 실험실일까. 오늘 내 옆구리가 뻐근한 이유는 어제 골프를 쳐서가 아니라 신의 경고를 받았기 때문일까.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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