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나는 영국인이 아니다 나는 유럽인이다" "영국은 자살했다"
영국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의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재투표를 주장하고 나섰고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투표 결과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등 갈등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투표 다시 해야"= BBC방송에 따르면 브렉시트 결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의회 청원이 26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된 지난 24일까지도 서명자는 22명에 불과했다. 브렉시트 이후 청원이 급증했고 동시 접속자가 폭주하면서 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했다.
청원을 처음 개시한 윌리엄 올리버 힐리는 "투표율이 75% 미만이고 탈퇴나 잔류 어느 쪽이든 60%가 되지 않으면 재투표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투표 청원은 국민투표에서 잔류 지지가 높았던 런던과 인근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런던의 잔류 지지는 평균 59.9%였으며 금융가가 밀집한 '시티 오브 런던' 등 일부 자치구에서는 70%를 웃돌기도 했다.
그러나 의회 청원으로 재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소급 입법이 불가능하고, 의회에서 논의될 수는 있지만 조처를 하는 것까지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BBC는 설명했다. 10월께 사임하겠다고 언급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한번 탈퇴는 영원한 탈퇴라면서 재투표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양극화·세대 갈등, 어떻게 봉합할까= 이번 투표로 영국 내 경제적 양극화와 세대갈등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를 두고 기성 체제와 기득권층, 엘리트층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만과 불신이 예상보다 컸고, 국민투표를 계기로 폭발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영국이 EU에 가입한 1973년 이후 태어나 통합 유럽의 분위기에서 자란 세대와 그 이전 세대와의 차이는 이번에 브렉시트 지지와 EU 잔류지지라는 표심으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결국 브렉시트로 결론이 나자 20∼30대 젊은이들은 투표 결과에 분노와 충격을 느끼면서 미래가 망가졌다는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뉴욕타임스(NYT) 등은 분석했다.
◆정치권, 극심한 분열 예상= 정치분열도 불가피하다. 차기 총리 후보로 EU 탈퇴 진영을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 등이 거론되지만 국민투표를 두고 당이 양분됐던 탓에 총리 선출이 불발될 가능성도 관측된다.
EU 잔류를 지지해온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포의 리더십도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코빈 노동당 대표가 26일 자신의 축출을 주도한 힐러리 벤 예비내각 외무장관을 해임한 것은 노동당 예비내각 내부에서 일고 있는 코빈 대표에 대한 반감을 상징한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움직임에도 불이 붙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 직후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 내각회의를 마친 뒤 "EU 내 스코틀랜드 지위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모든 방안을 찾고자 EU 기구들, 다른 회원국들과 즉각적인 협상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독립 주민투표 재실시를 위해 필요한 관련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터전 수반은 "제2의 주민투표는 테이블 위에 올릴 필요가 있는 방안"이라면서 "필요한 입법이 진행되도록 하는 조치들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화에 반대하며 고립주의를 택한 영국의 선택은 과거로의 회귀를 뜻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호소하던 영국 정치권은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영국의 선택이 세계적인 변화에 역행하며 몰락을 자초하게 될지, 갈등과 분열을 현명히 봉합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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