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권력 동원 압력에 앓던 한국은행이 홈런을 쳤다. 한은맨이 아닌 외부인의 홈런이긴 했지만 파장은 컸다. 타자가 바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멤버 중 한명인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였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오해'도 샀다. 직접출자에 반대하는 한은이 Fed와 짜고 친 홈런 아니냐고. 한은은 펄쩍 뛴다. "불러드 총재 초청은 구조조정 이슈 전 잡혔다.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일 뿐"이라고.
이 때 불러드 총재가 제대로 펀치를 날렸다. 짜고 쳤던, 아니든 중요치 않다. "세금을 내는 국민의 의견을 고려해 의회서 결정할 문제"라는 말 한마디가 발권력의 무게를 충분히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한은은 금통위원들 동의로만 돈을 찍을 수 있다. 급전이 필요한 정부가 발권력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수출이 최대 목표였던 개발금융시대, 우리도 그랬다. 1976년 수출입은행 제정 당시 수출입금융의 재원 마련이 쉽지 않고, 정부 재정 여력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로 한은의 출자가 이뤄졌다. 지금은 그 때와 다르다. 금융시장이 선진화되면서 자금조달 여건이 개선됐다. 개발기관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축소됐다. 발권력으로 국책은행 자본을 확충하자는 건 40년전 개발금융시대로 회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이 10조원 안팎이라고 한다. 국민 한명당 19만3857원(2016년 4월 인구 5158만4349명 기준)씩 줄 수 있는 돈을 조선ㆍ해운사란 특정 기업에 지원하는 셈이다. 전 국민이 아닌 특정영역에 투입할 자원인데 국회 동의라는 절차를 생략해도 될까. 급히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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