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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양적완화' 논쟁 40일…공약에서 구조조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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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4·13 총선 공약으로 시작된 '한국판 양적완화' 논쟁이 40일을 맞았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풀자던 여당의 공약은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 마련으로 가닥이 잡혔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은 지난 4일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TF) 킥오프(kick-off)회의를 진행하고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는 산은과 수은의 경영 현황을 점검하고, 자본확충의 전제조건으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해야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 부실기업 관리를 소홀히 한 산은과 수은에 강도높은 자구계획을 제출할 것을 주문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이 4일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TF) 킥오프(kick-off)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이 4일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TF) 킥오프(kick-off)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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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풀기' 공약에 시작된 양적완화 논쟁=시작은 새누리당 총선 공약이었다. 강봉균 새누리당 전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3월 29일 총선 공약으로 한은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해소를 위해 자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 전 위원장의 한국판 양적완화의 골자는 KDB산업은행이 발행한 산업금융채권과 주택금융공사가 발생한 주택저당증권(MBS)를 한은이 인수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했다. 한은은 한은법 상 정부보증채와 국채만 살 수 있어 이를 개정해야만 산은채와 MBS 인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4·13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여소야대 정국이 시작됐다. 야당은 이미 한국판 양적완화가 공약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반대의 뜻을 밝혔다. 법 개정 없이는 한은의 발권력 동원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야당 뿐 아니라 여당마저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논의가 수그러들었다. 당시 여당 내에서도 한국판 양적완화 논의는 끝났다는 분위기였다. 이후 정부가 해운 조선업을 중심으로 부실기업 구조조정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 朴 "양적완화 긍정적 검토"…되살아난 논의=양적완화 논쟁이 다시 불붙은 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였다. 박 대통령은 총선이 끝난 지 2주 뒤인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국장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과 관련, "저는 이건 한번 우리가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야 된다는 입장"이라면서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추진이 되도록 힘을 쓰겠다"고 밝혔다.

2013년 4월 24일 언론사 편집국장단과 오찬을 함께한 박근혜 대통령(사진제공 : 청와대)

2013년 4월 24일 언론사 편집국장단과 오찬을 함께한 박근혜 대통령(사진제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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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28일 국무회의에서는 "구조조정을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다"며 이른바 '선별적 양적완화론'을 꺼내들었다.

박 대통령 발언 직후 정부는 구조조정의 실탄 마련 주체로 한은을 지목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과 수은의 자본을 확충할 방안이 필요했다. 국회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던 중 금통위원 7명만을 통해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한은이 실탄 마련 중심에 서게 됐다. 재정지원의 경우 국회 동의를 거쳐야하고 이 과정에서 재정지원의 당위성과 적정성, 지원방법, 절차 등에 대해 야당의 동의를 구해야하기 때문에 시행 자체가 쉽지 않을 거란 판단에서다.

이 과정에서 '양적완화'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거시경제정책인 양적완화는 모든 경제주체에 골고루 돈을 풀어 그 영향이 골고루 미치는 데 반해 이번 정부의 한국판 양적완화는 특정 기업의 구조조정을 타깃팅 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개념이어서 구제금융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가 주장하는 '선별적 양적완화'는 한은 특별융자(특융)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또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할 정도의 위기 상황이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한은은 그동안 위기 시에만 한은특융을 발동해왔다. 1985년 도산위기 해외 건설사 및 해운사 지원, 97년 은행·종금사·증권사 지원, 2008년 은행권 자본확충펀드 지원 등이 한은특융을 통해 이뤄졌다. 한 한은 고위관계자는 " '노멀'타임인데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한 적이 없다"며 전례가 만들어 질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 강도높은 정부 압박에…"국민적 합의" 원칙 강조한 한은=논의의 중심이 된 한은은 처음부터 발권력 동원에 대한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비쳤다. 국회에서 양적완화 논란이 처음 나왔을 때 이주열 한은 총재는 "특정 정당의 공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한국은행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총선 이후엔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지금은 한은이 나설 상황은 아니다"라고 비교적 분명하게 반대 입장을 내놓기도 했지만 "중앙은행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얼마든지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발언 이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강도높게 한은의 역할론을 주장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연일 통화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 왼쪽)은 3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제19차 ASEAN+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대화를 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 왼쪽)은 3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제19차 ASEAN+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대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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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한은은 "구체적인 요청이 오면 한은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는 등 원칙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한은의 발권력 동원은 금통위만 거치면 결정되지만 인플레이션 등으로 이어져 국민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쉽게 결정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은의 역할론을 강조했지만 한은이 원칙론을 고수하면서 갈등구도가 형성됐다. 특히 지난달 29일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가 통화신용정책보고서 기자설명회에서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재정의 역할을 하려면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하다"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은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라고 말해 갈등 국면이 확대됐다.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한은이 사실상 발권력 동원을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정부와 갈등을 빚는 것으로 비춰지자 이 총재는 2일 이례적으로 집행간부회의 내용을 공개하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애썼다.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할 것이라 여러차례 밝혀왔다"며 "기업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므로 한국은행의 역할 수행 방안에 대해 철저히 점검해달라"고 간부들에게 주문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4일(현지시간) 제19차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차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머물던 중 기자간담회에서 발권력 동원에 대해 사실상 난색을 표했다.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납득할만한 타당성이 필요하고 중앙은행이 투입한 돈의 손실이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원칙"이라며 "손실 최소화 원칙에서 보면 아무래도 출자보다 대출이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실 최소화 원칙과 관련해 "중앙은행이 손해를 보면서 국가 자원을 배분할 권한은 없다"며 "한국은행법상 확실한 담보가 있어야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권력을 동원한 출자로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추진하려던 정부의 요구에 대해 사실상 난색을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부와 한은이 국책은행 자본확충안을 마련하기까지는 상당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TF)는 앞으로 재정과 통화 정책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다음달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논의에 따라 해운·조선업을 시작으로 이어질 기업 구조조정 자금 논의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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