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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9의 비밀] 神앞에 겸손해진 인간의 수 '9'

최종수정 2016.03.15 11:15 기사입력 2016.03.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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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숫자 '9'가 조명받고 있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이 거듭되면서 바둑의 세계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다.

예로부터 숫자 9는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수로 인식됐다. 십진법상으로 숫자 '10'을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완벽한 수로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에 여기에서 1이 못 미치는 9를 인간의 세계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수로 삼았던 것이다.
숫자는 유일한 세계 공통 언어인 만큼 숫자와 관련된 이런 인식은 동서양을 통틀어 통용돼 왔다. 숫자가 갖는 상징성과 연관성을 통해 철학을 이해하고 나아가 종교적 세계관과도 잇닿아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음양오행으로 풀었던 동양에서 숫자 9는 양의 기운이 충만한 완전한 수라 여겨졌다. 이보다 더 큰 수가 없는 불후의 숫자였던 셈이다. 불교에서 9는 지고의 영적인 힘을 상징하면서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믿었던 아홉 개의 천체, 즉 '구천(九天)'을 의미했다.

한자 문화권에서 9는 높고, 길고, 깊고, 크다는 의미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됐다. 구척장신(九尺長身), 구우일모(九牛一毛), 구중궁궐(九重宮闕)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신령한 동물인 용 앞에 '구'를 넣은 것도 비슷하다. 구룡폭포, 구룡포, 구룡연 등 우리 지명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99세를 '백수(白壽)'라 칭하는 것은 100(百)에서 하나(一)를 뺀 것인데 9는 장수를 뜻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도 비슷하다. 이집트와 로마의 아홉 신 등 종교적 믿음이 영향을 미쳤다. 때로 서양에서 숫자 9는 '완전을 위한 기다림'을 상징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10에 근접한 9는 불길한 수로 여기기도 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완전한 수 10에서 1이 모자라기 때문에 불길하다고 여겼고 우리의 '아홉 수'라는 말이 그렇다.

이처럼 숫자 9는 완성을 의미하는 10의 전 단계로, 한 자리 숫자로 적을 수 있는 가장 큰 수이며 완성을 기다리는 수였던 셈이다.

우주를 품고 온 세상을 담았다는 바둑판이 가로 19줄, 세로 19줄로 그려진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반상(盤上)에서 세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천원(天元)'을 모든 방위에서 10번째에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19X19'의 바둑판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둑에서 최고수인 프로 9단은 입신(入神)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반상의 이치를 깨닫고 '신의 한 수'로 반상을 주무를 수 있는 신에 범접한 단계인 것이다.

6세기 양무제 때 바둑의 기품(棋品)을 9단계로 구분했는데 9단이라는 '품계'는 승부를 초월한 신의 경지로 여겨졌다. 프로 바둑에서는 10단, 11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 동양권 바둑에서 9단이 한동안 없었던 것 역시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한 일종의 겸손의 표현일 수 있다. 일본에서는 9단에 해당하는 '명인'이 있었지만 단 한 명의 상징적인 존재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반상의 개척자'로 불렸던 조남철 국수의 경우 한국기원의 뒤늦은 추대로 9단이 됐다.

그러나 한국기원 승단규정 변경에 따라 지금은 9단 풍년이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3월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세돌 9단을 비롯해 71명의 프로 9단이 활약하고 있다. 일본에 63명, 중국에 36명, 대만에 5명의 프로 9단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단연 압도적인 숫자다. 그러나 정작 프로 기사들은 초단부터 9단까지 전부 같은 실력으로 인정하고 호선으로 바둑을 두고 있다. 실제 이세돌 9단도 3단 시절 후지쓰배 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바 있다.

'정치 9단' '야구 9단'이라고 각계 최고수를 지칭하는 말도 바둑에서 유래했다. 바둑뿐만 아니라 무술에서도 9단 이상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동양에서 최고의 숫자를 9라 여긴 데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우리 정치권에서 현대사를 풍미한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은 정치 9단의 대명사다.

스포츠계로 눈을 돌리면 9의 쓰임은 더 다양해진다. 야구는 한 팀에 9명의 선수가 9이닝 동안 경기를 펼치고 축구는 전후반 90분 경기를, 골프는 9홀을 두 번 도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 등이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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