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이러쿵저러쿵'
둘째, 러브호텔과 대웅전은 잠깐 머무르는 곳이다. 러브호텔에서 하숙을 한다면 우스운 일이다. 절집 또한 주거하는 곳이 아니다. 이 ‘잠깐 머무름’의 정신은 바로 불교의 핵심이다. 부처는 정주(定住)에서 생기는 집착을 경계했다. 집착은 편견과 고집과 욕심과 망상을 만들어낸다. 지나가는 존재의 진상을, 러브호텔 만큼 절실하게 깨닫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셋째, 대웅전과 러브호텔은 사랑을 구하는 중생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중생을 염려해서이다. 어느 곳도 사람을 굳이 가리지 않으며 그 응접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를 두지도 않는다.
다섯째, 두 곳은 모두 씻는 일을 중시한다. 정신을 씻는 일이든 몸을 씻는 일이든, 사랑에는 이런 세척 과정이 필요하다.
여섯째, 대웅전이나 러브호텔이나 ‘잘 되어가는 일’을 격려하는 곳이기 보다는, 문제 있고 괴롭고 어지러운 것들을 안고 찾아드는 곳이다. 하지만 러브호텔에서 러브를 찾기 어렵듯이, 대웅전에서도 러브의 화신을 진짜 만나고 가긴 어렵다.
일곱째, 러브호텔의 싱숭생숭한 붉은 네온장식과 대웅전의 붉고 푸른 단청은 ‘사랑’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나름의 기술이다. 인간은 ‘모텔’이란 네온싸인을 볼 때와, 단청(丹靑)을 지나며 대웅전에 들 때, 떠올려야할 사랑을 아주 자연스럽게 구분한다.
사실, 견강부회로 대웅전과 모텔을 엮어놓았지만, 인간의 오롯한 기원과 삶과 죽음의 성찰이 깃들어야할 절집이, 단순한 휴식 이상의 세속적 혐의를 자주 받아온 러브호텔과 어깨를 겯고 있는 일은, 러브호텔을 대웅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대웅전을 하계로 끌어내리는 일에 가깝다.
우린 이제 ‘정신’이나 ‘품격’이라고 하는 전시대의 비교적 높은 가치들을 모두 러브호텔 라인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뉴스나 정보들이 곧잘 그런 형국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심각한 북핵 기사나 개성공단 뉴스 옆에 ‘가수 *** 깊은 슴가골’에 관한 소식이 함께 뜨는 현상이야 말로, 대웅전 옆에 있는 러브호텔을 방불하는 모양새가 아니던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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