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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 '아이 교육' 놓고 3년째 막장 싸움…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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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 30만원' 준다던 누리과정→'0원' 될 위기…다음 주 '보육대란'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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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정부가 2012년 12월27일 내놓은 '2013년 경제정책방향' 참고자료다. 당시 정부는 '2016년 만 3~5세 유아에 대해 누리과정 정부 지원금을 일괄적으로 월 3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런데 정작 2016년 1월 현재, 누리과정 예산은 30만원은커녕 아예 파행될 위기에 처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뒤 최악의 보육대란이 발생하게 된다. 매달 20일을 전후로 누리과정 예산이 집행됐었던 만큼, 남은 일주일 안에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당장 유치원은 문을 닫거나 수십 만원의 보육비 부담이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넘어갈 처지다.
게다가 정부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지자체), 지방 교육청, 유치원·어린이집 관련 협회 등 이해당사자들은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을 둘러싸고 대법원 제소, 검찰 고발 등을 언급하며 법정 싸움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누리과정 예산 파행,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무상보육' 누리과정, MB가 만들고 박근혜 정권서 본격화=누리과정의 시작은 이명박 정권에서였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5월 "보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만 5세 공통과정' 도입 계획을 밝혔다. 이어 7월, 공모를 통해 '누리과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교육부)와 보건복지부(복지부)의 공동 보도문에는 '보호자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만 5세 유아 대상 월 20만원(2016년 월 30만원)의 교육·보육비를 지원한다'고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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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5세 누리과정을 실시하기도 전, 교육부는 '대상을 만 3~4세로 확대하겠다'는 추가 계획을 그해 12월 내놨다. 이 전 대통령은 "만 5세 이하 아이들 모두를 국가가 책임지고 교육해야 한다"며 강조했다. 취지는 환영받을 만했으나 구체적 재원 대책도 없는, 다소 무리한 확장이었다.

왜 급했을까. 누리과정이 시행된 2012년은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해다.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누리과정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다. 대선을 앞두고 TV 토론에서 "0~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TV토론회에서 유아 교육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사진 : jtbc 방송화면 캡처)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TV토론회에서 유아 교육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사진 : jtbc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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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12월19일 당선됐고, 정부는 일주일여 뒤인 27일 누리과정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내놨다. 당장 2013년부터 누리과정 연령을 '만 3~5세' 유아로 확대 시행하고 지원 대상을 기존 '소득 하위 70%'에서 '전 계층'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지원 금액도 전 연령 22만원으로 상향 통합해 곧바로 지급한 뒤 향후 단계적으로 30만원까지 인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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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예산'…정부 예산보고서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누리과정'=결국 문제는 예산이다. 지원대상이 단계적으로 확대된 것이 아니라 만 5세에서 만 3~5세로 일순간 늘어나 당장 몇 배 많은 예산이 필요하게 됐다. 그렇다면 정부는 당시 재원마련 대책을 어떻게 제시했을까.

누리과정이 처음 도입된 2012년 당시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누리과정에 필요한 재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으로 일원화'하겠다는 표현이 거듭 등장한다. 교부금은 중앙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의 일정 부분을 떼어내 지자체에 주는 일종의 지원금 형태 예산이다. 결국 교육교부금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집행하는 예산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사업인 누리과정에 필요한 돈을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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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교육교부금 비율(내국세의 20.27%)이 소요 예산 약 4조원에 이르는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도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마다 경제 발전에 따라 세수가 증가하면 교부금 비율을 늘이지 않아도 절대 금액이 늘어나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11년 이후 3년 연속 세수 결손을 기록했다. 중앙정부의 세수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자 당연히 고정비율로 지급되는 교육교부금도 2015년 기준 정부 추계(49조4000억원)보다 무려 10조원이나 적은 39조4000억원에 그쳤다.

그 결과 누리과정뿐 아니라 지방교육청 재정 전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자체는 그동안 누리과정 예산을 메우기 위해 몇 개월짜리 단기 예산을 편성하거나 정부로부터 예비비를 받아 그때그때 메우는 식의 '땜질 처방'을 해 왔다. 심지어 충북·제주 교육청의 경우 교직원 인건비까지 일부 줄여 누리과정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가 감당하지 못할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기존에 예산이 쓰여야 할 곳까지 악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정부가 유아교육법 시행령까지 바꿔가며 복지부 관할인 어린이집 지원금도 완전히 끊어버리자 지자체는 지방채까지 발행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이자 정부 정책이었던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지자체가 끝내 빚까지 낸 셈이다. 향후 이에 따른 이자 비용도 고스란히 지자체의 몫이다.

이처럼 지방 교육 재정이 파탄 위기에 이르는 동안, 정부 예산 보고서에는 '누리과정'이 쏙 사라졌다. 2013년 3월 공식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그해 12월27일 내년도 예산정책 방향을 알리는 '2014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본 자료와 참고자료까지 더해 총 160여 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의 그 어디에서도 '누리과정'이란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복지부가 관할하는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보육료 지원 대책이 담겼으나 지방 교육청이 담당하는 유치원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2014년 12월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 보고서와 최근 내놓은 '2016년 경제정책방향' 보고서에서는 그마저도 빠졌다. 정부의 예산 계획에 '국가가 책임 지겠다'던 누리과정이 실종된 것이다.

한만중 교육감협의회 정책위원은 본지 통화에서 "(기존 교육교부금만으로 누리과정의) 재원 충당이 가능하다는 교육부의 주장이 입증되지 않으면서 사태가 커졌다"며 "이미 2012년부터 지자체가 크게 반발했고 시·도지사 협의회에서도 성명서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지적해 왔다"고 말했다. 누리과정 예산 파행은 이미 도입 당시부터 예견됐던 일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4조나 필요한 새 사업이 투입됐는데도 교부금 인상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를 충당하기 위한 어떤 제도적 장치도 내놓지 못했다는 데 대해서는 교육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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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지난 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중앙정부가 부족한 예산을 더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이 65.2%로 나타나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도 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응답은 23.5%에 불과했다. 이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전화로 진행됐다.(신뢰수준 95% 수준, 표본오차 ±4.3%포인트)

◆'유치원+어린이집' 통합 한다더니…5년째 '제자리'=누리과정은 태생부터 구조적 문제를 안고 시작된 정책이다. 이명박 정권때 도입 당시 계획자료를 보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이원화돼있는 교육·보육 과정을 통합해 모든 만 5세 어린이에게 동일한 공통과정을 제공하고 교육·보육비를 지원하는 제도'라고 설명돼 있다.

그런데 같은 교육과정을 실시하면서도 유치원은 각 지방 교육청이, 어린이집은 중앙정부의 복지부가 관할하다보니 통합 실시된 누리과정 예산부족 문제가 불거지면 곧바로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이런 구조적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수년 째 '교육교부금으로 알아서 하라'는 태도로 나왔고, 반면 지방 교육청은 재정이 점점 파탄에 이르자 아예 유치원 몫 예산까지 전액 삭감해버리는 극단적 대응까지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16일 정부의 경제정책방향 보고서에는 '유치원·보육시설 관리부처 통합방안 마련'이라는 문구가 짧게 언급됐다. 통합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이 시행된 지 5년 만에 공식적으로 나온 계획이지만, 아직 구체 방안은 안갯속이라 실제 추진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누리과정이 도입된 이후 교육부를 거쳐관 장관들. (왼쪽부터)이주호 전 장관, 서남수 전 장관, 황우여 전 장관 겸 사회부총리, 이준식 신임 장관 겸 사회부총리(사진 : 아시아경제 DB)

누리과정이 도입된 이후 교육부를 거쳐관 장관들. (왼쪽부터)이주호 전 장관, 서남수 전 장관, 황우여 전 장관 겸 사회부총리, 이준식 신임 장관 겸 사회부총리(사진 : 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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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진흙탕 '가계부 싸움'? 중요한 건 '의지'…이준식 신임 장관에 국민 눈 쏠려=정부는 '기존 교부금 예산으로 충분하다'며, 반면 지방 교육청은 '턱없이 부족하다. 근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며 서로의 가계부를 간섭하며 3년째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사이에 낀 지자체는 각각 단체장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땜질식 예산 지원을 제각각으로 하는 가운데 일각에선 시행령 위법 논란까지 제기된다. 해답이 보이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다.

이 와중에 이 모든 과정을 최근까지 관장해 온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은 총선 출마를 위해 물러났다. 차기 총선에서 인천 연수구 지역 출마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장관은 지난 12일 퇴임식에서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별도 언급하지 않은 채 "(유치원-어린이집) 통합을 잘 매듭지어달라"는 짧은 당부를 남겼다.

이제 모든 공은 이준식 신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넘어왔다. 이 신임 장관은 13일 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갖고 "누리과정을 포함한 유아교육의 현안을 해결하는데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진정한 축복이 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겠다"고도 했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이 장관에게 주어진 첫 과제다. 그의 입에 국민의 눈이 집중되고 있다.

▶[카드뉴스]'누리과정' 공약은 했지만, 예산은 '아몰랑~'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일러스트=이진경 leeje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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