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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몬스터]'투자의 神', 日선 '고레카와 긴조'의 대명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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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스미토모 금속광산'에 투자, 유력 재벌 제치고 소득세 1위

- "인생엔 한두번 찬스가 있다. 이를 살리는 판단은 일상의 정신에서 나온다"
- 1930년 첫 주식투자, 국제경제 홀로 독학하며 내공 다진 '승부사'
고레카와 긴조

고레카와 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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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1983년 5월, 80대 중반의 노인이 일본 소득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석간신문 1면을 장식했다. 대기업 총수, 부동산 거부, 유명 연예인 등이 차지했던 자리에 만년(晩年)의 노인이 깜짝 등장했다는 소식에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그것도 6개월 동안 한 종목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만으로 내로라하는 부자들을 모두 제쳤다는 스토리는 더욱 흥미를 끌었다.

이 80대 노인은 일본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식시장의 신'이라고 불리는 '고레카와 긴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베일에 가려진 투자자였다. 어떤 기업에 투자하는지, 수익률은 얼마나 되는지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고레카와의 투자 비법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인 1992년에 펴낸 자서전 '파란에 산다'를 통해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은 투자는 '스미토모 금속광산' 주식을 매집해 약 6개월 만에 200억엔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거머쥔 일이었다. 일본 국세청은 소득세법에 따라 고액 납세자 명단(조자반즈케ㆍ長者番付)을 매년 5월 발표한다. 가장 소득세를 많이 낸 인물은 '조자반즈케 니폰이치'라고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고레카와는 1981년부터 이듬해까지 벌어들인 이 돈으로 소득세 약 28억9000만엔을 신고하면서 조자반즈케 니폰이치가 됐다.

현재 환율로 단순 환산하면 6개월 만에 2000억원의 돈을 벌어서 다음 해에 소득세로 200억원을 낸 셈이다. 2014년 말 기준 3만3000달러인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당시는 1만달러 수준임을 감안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6600억원을 벌어서 660억원을 세금으로 냈다고 할 수 있다.

고레카와가 스미토모 금속광산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1년 9월 신문기사를 보면서였다. 일본 금속광업사업단은 가고시마현의 히시카리 광산에서 금맥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젊은 시절 광산업을 했던 고레카와는 신문기사를 본 직후 가고시마로 달려가 금맥이 발견됐다는 광산을 답사했다. 다음 날부터 여러 증권사를 동원해 스미토모 금속광산의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가 사들인 주식은 약 5000만주에 달했다. 스미토모 금속광산이 발행한 주식의 16%에 이르는 규모였다. 그가 스미토모 금속광산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을 당시의 주가는 230엔에서 240엔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금맥의 가치가 시장에 알려지면서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 달 만에 주가는 600엔까지 올랐고, 이듬해인 1982년 3월 말에는 주당 1000엔을 돌파했다.

고레카와는 스미토모 금속광산의 주가가 1000엔을 돌파하자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주가가 1200엔까지 상승하는 틈을 타 보유주식을 모두 매도해 매매 차익 200억엔을 거머쥐었다. 일본 주식투자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일본 증권가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를 '주식의 신' '최후의 주식승부사' 등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이에 대해 고레카와 신조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는 한두 번의 찬스가 있다. 그것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판단은 일상의 노력과 정진, 그리고 진실한 이론과 실천을 통해 매일 사고하는 훈련에서 나온다.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많은 진검승부를 경험하고 승부욕을 키워야 한다."

신의 반열에 오르는 길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 야망을 좇아 10대 후반에 무일푼으로 중국으로 넘어가 일본군에 생필품을 대며 기업가로 승승장구하다가 전 재산을 날렸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34세 되던 해인 1930년 처음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아내가 마련해 준 70엔을 모두 헤이와부동산의 전신 '신동주(新東株ㆍ도쿄증권거래소 신주)'에 투자했다. 그해 연말 그의 투자금은 7000엔으로 불어있었다. 주식투자로 이룬 첫 번째 성취였다.

그는 이 돈을 종잣돈 삼아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광산업을, 중국에서는 일본 군대에 군수품을 납품하는 사업을 했다. 두 나라 모두 불같이 사업이 일어났지만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전 재산을 몰수당했다.

이후 야인으로 지내면서 와신상담하던 고레카와는 1950년대 말 부동산 투자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일본 정부가 전후(戰後) 경제 복구를 위해 대대적인 부양책을 내놓을 것을 예상하고 사 둔 토지 가격이 뛰자 이 땅을 처분해 3억엔을 손에 쥐었다.

그는 이 돈으로 1960년 다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6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1930년대 주식투자를 했던 경험과 도서관에서 독학으로 국제경제를 공부하면서 다진 '내공'이 어우러지면서 그가 손을 대는 종목마다 대박이 났다.

스미토모 금속광산 이외에 니혼(日本) 시멘트, 후지야(不二屋), 마루젠(丸善) 석유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올리면서 증권가의 큰손으로 이름을 날렸다.

도와(同和)광업, 모치다(持田)제약 투자는 과욕으로 큰 손실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의 손실은 이후 수백억 엔을 벌어들이는 초석이 됐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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