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근거는 없다. 카운터는 하지 않았다. 그냥 배치된 좌석 숫자와 점유율을 눈으로 보고 추산한 거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엄수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 인원의 정확한 숫자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행정자치부 담당자의 말이었다. 한마디로 영결식 참석 인원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 지 아무도 세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대충 '눈대중'으로 짐작한 7000명이란 숫자를 '공식 통계' 인양 대내외적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오후 5시50분쯤 행자부의 발표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무려' 7000명이 참석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고스란히 각 언론보도로 이어졌다. 사상 첫 국가장으로 엄수된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 인원은 이렇게 공식화됐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숫자가 나왔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TV를 통해 지켜보던 사람들은 "왜 저렇게 참석자가 적을까"하는 말을 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현장 취재를 다녀 온 기자들은 "많아봐야 3000명 정도"라고 일관되게 얘기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7000명'라는 딱 떨어진 숫자를 집회 참석자 통계로 내놓지 않는다. 변수가 있기 때문에 '7000여명'이라고 얼버무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행자부 담당자에게 물었다. "대체 어떤 근거로 7000명이라는 숫자가 나온 것인가. 경찰이 그런 통계를 내놨다면 확인하겠으니 해당 부서와 담당자를 알려달라". 그랬더니 곧 말이 바뀌었다. "경찰이 통계를 내지는 않았고, 의전 담당 부서에서 집계한 것"이라고 했다.
의전담당부서 실무자에게 다시 확인했다. 어떤 근거로 숫자를 추산했느냐고 질문했다. "카운터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떻게 7000명이라는 숫자를 도출했는지 궁금하다"고 거듭 물었더니 "좌석 배치 숫자와 점유율을 눈으로 보고 추산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마디로 '눈대중'으로 계산했다는 얘기였다. 어떻게 정부 공식행사를 개최하는 데 참가 인원 수도 계산하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랬더니 그의 대답은 "실내 행사는 초청장 발행시 비표(신원확인을 위한 표식)에 회수권을 첨부해 참석 인원 숫자를 세지만 실외 행사는 워낙 변수가 많아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런가? 나름대로 애로가 있으니 그럴 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당시 영결식이 야외에서 진행되긴 했지만 제한된 구역에서 초청 인사만 입장시킨 가운데 진행됐다는 점에서 실내와 다를 게 뭐가 있냐고 반박하자 곧 진상이 드러났다. 행자부 관계자는 "급박하기 행사를 준비하면서 초청장도 밤새 인쇄를 했다. 비표에 회수권을 포함시키지 않는 바람에 카운터가 불가능했다"고 털어놨다.
국가 공식 행사이기도 한 전직 대통령의 영결식이 이렇게 허술하게 치러졌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왕실의 의례를 참석자 명단까지 꼼꼼히 기록한 '조선왕실의궤'를 세계적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 아니었던가?
어린이합창단 추위 속 방치 논란, 일반시민 영결식장 입장 불허, 초청 인원 참석률 저조 등도 이번 국가장에서 드러난 문제점이다. 하지만 후세에 길이 남을 국가장 기록을 허술하게 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더군다나 솔직히 있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2~3배로 국가장 영결식 참석자의 숫자를 부풀렸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국가 기록의 신뢰도가 추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유족ㆍ고인의 명예에도 누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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