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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떠나는 검찰총장이 남긴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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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시인 조오현의 '아득한 성자'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 입장에서 '시'를 통해 사색하는 것은 사치로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마음도 휴식이 필요하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필요도 있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권력과 돈을 움켜쥐려 영혼의 상처를 방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거대한 우주의 시간에서 우리는 잠시 스쳐 가는 바람일 뿐이다. 조오현의 시를 통해 모처럼 '생각의 숲'에 빠져 평온한 한때를 보냈다.

그 시를 내게 권한 인물은 김진태 검찰총장이다. 김 총장은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다. 명절이나 새해 등 의미 있는 시기가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곤 한다. 조오현의 시집도 그중 하나다.

김진태 검찰총장

김진태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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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장은 유명한 '칼잡이(검찰에서 특수부 검사를 부르는 말)' 출신이다. 그런 김 총장이 종교적인 명상을 담은 문학 작품에 관심이 많은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검사가 쥐고 있는 칼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일까. 김 총장은 평소 '사람을 살리는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환부만 정확하게 도려내야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수사가 일선 검찰에서 제대로 실천됐는지는 의문이다. '김진태 체제'의 검찰에서도 여러 사람이 수사과정에서 목숨을 끊었다. 수개월동안 무차별 수사로 기업에 큰 부담을 주기도 했다. 표적수사, 하명수사를 둘러싼 의혹의 시선도 여전하다. '김진태 체제'의 검찰은 그런 의미에서 반성할 지점이 있다.

김 총장은 12월1일 물러난다. 검찰총장이 법에 보장된 임기 2년을 채우고 물러나는 것은 8년 만의 일이다. 김 총장은 11월3일 마지막 확대간부회의에서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을 우주보다 더 무거운 인간으로 대하며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문제가 드러난 특정 부위가 아니라 사람이나 기업 전체를 마치 의사가 종합 진단하듯 수사한다면 표적수사라는 비난을 초래한다."

검찰 조직 입장에서는 아픈 얘기다. 그 얘기를 검찰 조직의 수장이 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있다.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다. 자신이 제대로 했다면 그런 비판을 받았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터무니없는 지적은 아니다. 하지만 김 총장 얘기를 책임회피라는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야박한 것 아닐까 싶다.

김 총장은 갑자기 새로운 얘기를 한 게 아니다. 검사의 자세를 강조해온 그의 지론을 다시 전했을 뿐이다. 검찰총장은 '외풍'에 시달리는 자리다. 김 총장도 여러 고비가 있었고 위기가 있었다. 그는 떠나기에 앞서 경험으로 터득한 교훈을 후배들에게 전했다.

떠나는 선배가 후배 검사들에게 남긴 고언(苦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사람을 살리는 수사는 결국 검찰을 살리는 길이라는 얘기 아닐까.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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