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1월이다. 아무리 서둘러도 2016학년도에는 국정교과서를 정식 교과서로 쓰도록 만들 수가 없다. 잘해야 2017년 3월이나 돼서 발간될 것이다. 지금 분위기를 보아서는, 집필과 편집이 될 때까지의 1년여 기간 동안 내내 여론에 시달리리라. 집필진 선정부터 잡음이 일고, 편찬책임자는 장차 그 명단을 공개할 것인지도 망설이지 않는가. 그렇게나마 국정교과서가 발간된다 한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때 가서 또다시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려 해도 그리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발간준비를 하는 동안 생불여사의 상태인 국정교과서가 다음 정권 1년 동안 어쩔 수 없이 또 쓰일 수도 있다. 다음 정권이 누구 손에 쥐어질지는 몰라도, 설령 정권 재창출이 된다 한들 그냥 안고 갈 리는 없다. 오히려 지난 정권을 털고 가야 할 압박을 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회군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여론의 기억이 희미해 질 즈음에 국정화 방침을 취소해도 그뿐이다. 그 예산이 30억~40억원이라니 좀 비싸기는 하지만 어차피 1년 내지 2년 쓰일 입시용 교재일 뿐이지 않은가.
정리하자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현 정부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공감을 얻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 운명은 난산과 단명이다. 이번에 또 한 번 유명세를 탄 E.H 카는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고 했지만, 이번 국정교과서의 의미가 그렇게 깊을 것 같지는 않다. 훗날 국정교과서 사태 자체가 역사적 사실이 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여권의 뒷공간도 열려 있다. 이른바 헬조선으로 가는, 누란(累卵)같이 불안한 국정 말이다. 동네 슈퍼에서 라면 납품을 받는 것보다도 허술한 한국형전투기(KF-X)사업. 점차 빨라지는 양극화의 속도. 요지부동인 사교육비. 유례없이 낮은 출산율로 눈앞에 닥친 인구절벽. 아직 미제로 남아 있는 세월호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도대체 성완종에 막힌 MB청산은 언제 할 것인가. 이쪽으로 공을 찔러놓고 질주하기에는 태클이 두려운가.
바로 이 지점에서 국정교과서 논란의 배후에 있는 인식의 차이 역시 명백히 드러난다. 여기는 헬조선인가, 아니면 국정교과서로 주장하려는, 국민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가.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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