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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홈플러스 매각과 조세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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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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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계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매각됐다. 영국계 소매업 체인인 홈플러스는 2014년 기준으로 마트 140개에 기업형 슈퍼마켓 375개, 편의점 327개를 운영하면서 매출 8조7500억원, 영업이익 1800억원을 올린 국내 2위의 초대형 마트인데, 이번에 7조2000억원에 매각돼 투자금 1조4000억원을 제외하고도 5조8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시세 차익을 올렸다고 한다. 반면 인수자인 MBK파트너스는 매입 자금 중 5조원 이상을 차입하는 LBO(leverage buy-out) 방식으로 매년 2000억원 이상을 이자로 지불해야 한다.

기업이 사고 팔리는 일이야 사적인 거래이니 시비를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거래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 것 같다. 우선, 유통업을 전혀 모르는 사모펀드가 이렇게 막대한 빚을 안고 인수하다 보니 이자 부담과 투자금의 조기 회수를 위해 단기적인 현금 창출에 치중하게 될 것이고 결국 공급자에 대한 가격 하락 압력, 근로조건 악화, 과다한 배당 등 기업과 국민경제의 장기적 건강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번 거래가 우리를 더 불편하게 하는 것은 홈플러스가 그간 한국에서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음에도 손실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탈루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2012년까지는 영국의 모기업인 테스코에게 연간 30억원의 상표권 사용료를 지불했는데 2013년에는 616억원, 2014년에는 584억원으로 갑자기 20배 정도 더 지불해 2014년에는 법인세를 단 한푼도 내지 않은 것이다.

이런 다국적 기업들의 탈세 혐의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국가 간 조세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계화의 진전과 국가 간 조세 협약 등으로 홈플러스 같은 다국적 기업이 누구에게 세금을 얼마만큼 납부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특례조항이 여기저기 숨어 있는 우리 세법의 여러 조항들을 보물찾기 하듯이 잘 살펴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길을 찾거나, 모국과 우리나라 사이의 상이한 세법 규정과 국가 간 이중과세방지협약 등을 교묘히 이용해 가장 유리한 쪽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면 되는 것이다. 이익을 남긴 곳에 세금을 내는 것이 조세 정의라면 현재의 국제적 납세 관행은 그에 반하는 것이고 따라서 올바르게 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세금, 특히 법인세는 한 편에서는 비용이지만, 또 다른 편에서는 기업이 사적 이익을 위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 사회에 지불하는 일종의 '허가수수료(license fee)'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기업으로부터 이 수수료를 받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필요로 하는 여러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가 건강하고 풍요로울 때 기업도 번창할 수 있는 것이며, 기업이 올바르게 돈을 벌고 정당한 세금을 납부할 때 사회는 더욱 진보할 수 있다.
세금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해석에 동의한다면, 공평한 과세와 책임 있는 납세야말로 기업과 사회 모두가 공존공영하기 위한 전제조건일 것이다. 만약 홈플러스를 매각한 영국 기업 테스코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주장하듯이 고객과 신뢰 없이는 사업을 할 수 없고 기업시민으로서 신뢰 회복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홈플러스가 그동안 한국에서 얼마를 벌었고 얼마만큼 어느 나라에 세금을 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조세 정의는 투명한 세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정부는 기업에 대한 과세 제도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재정비해 조세 행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기업들이 낮은 세금을 찾아 나서는 조세쇼핑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UN) 등 국제기구도 상응한 노력을 하고 투자자들도 납세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한 내용으로 간주하고 이를 투자 의사 결정에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번 탈세 논쟁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조세 정의를 생각하는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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