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란 말은 아직도 '여보'처럼 완전히 부부 사이 호칭으로 정리된 말은 아니다. 우선 제3자인 윗사람을 가리키는 경칭으로서의 '당신'은 요즘도 점잖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회자된다. 당신이란 뜻은 '어떤 사람(身)에 해당하는 사람'이니 곧바로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고 빙 둘러말하는 유페미즘의 전통 속에 있다. '바로 그분'이란 이 말이 그런데 똑바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로 너'라고 말하는 그 당신이 된 것은 아리송하다. 어찌하여 이런 직격탄으로 변했을까. 부산에 가면 상대방을 가리키는 보통 호칭으로 당신이란 말을 밥 먹듯 쓴다. 당신은 수사관이 피의자를 압박하고 추궁할 때 쓰는 말이 아니라, 그냥 '너'란 뜻으로 쓰이는 편이다.
부부간에 쓰는 여보 당신은 어느 것이 남자 호칭인지 또한 여자 호칭인지 모호하다. 둘 다 쓰인다. 남자도 여보가 될 수 있고 여자도 여보가 될 수 있다. 남자에게도 당신이라고 말할 수 있고 여자도 당신이다. 그러니까 여보와 여보로 서로 부를 수도 있고 당신과 당신으로 호칭하기도 한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여보와 당신이란 말은 아직도 진화 중이고 변화하는 호칭처럼 여겨진다. 지금의 부부 관계, 지금의 사회적 문맥 속에서, 이 낱말의 풍성한 뉘앙스가 유효하다는 뜻이다. 여보 당신에는 어쩐지 잉꼬 같은 달콤한 분위기가 있다. 저 호칭은 이제, 슬슬 도망가고 있는 게 틀림없는 우리 순정의 낡은 푯대인지도 모른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