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태도는 축구협회 내부에 있는 인물이나 이른바 축구계의 야당 인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협회 임원을 맡은 허정무와 '평생 반골' 김호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그들이 '밥그릇'만을 의식해서라거나 실력은 형편없으면서 주제를 몰라서 그러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브레멘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걸리는 그 곳에 갔을 때 무릎까지 쌓인 눈을 밀어낸 축구장의 푸른 잔디가 오후 햇살에 반짝거렸다. 조광래는 땀투성이 얼굴로 호루라기를 불어가며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그는 프로축구 대우(현재 부산 아이파크)의 코치였다.
그는 정열적인 사나이였다. 독일 팀과 연습경기를 할 때 골을 내주면 피를 토할 듯 고함을 질렀다. 진주 억양이 강해 알아듣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지닌 정열의 데시벨은 충분히 느꼈다. 그는 트레이닝 일지를 영어로 썼다. 'Sprint', 'Force' 같은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 시선을 느끼곤 "뭐 하노?"라며 공책을 접었다.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대표팀 사령탑이 비었다. 월드컵 지역예선은 쿠웨이트와의 경기(2012년 2월 29일)만 남았다. 지면 최종예선에 못 나갈 수도 있다. 패장은 한국축구 몰락의 주범으로 몰릴 것이다. 언제 칼날이 떨어져 내릴지 모를 단두대. 여기에 머리를 집어넣을 코치는 없다. 있다면 한국 축구를 진정 사랑하거나, 별 볼일 없는 인물이리라. 특히 후자를 경계한다.
조광래를 경질한 과정은 잘못됐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다. 만회하는 길은 한 가지다. 적절한 인물을 절차에 맞게 기용하라. 무조건 월드컵에 가야 한다. 외국인 감독이냐 국내 감독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꿩 잡는 게 매고, 희든 검든 쥐를 잘 잡으면 훌륭한 고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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