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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축구와 사람 ⑪]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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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광래가 물러나고 최강희가 후임을 맡는 시점에서, 나는 외국인 감독을 한 번 더 기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내 지도자들에게 물으면 백이면 백 "이제는 우리 감독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굳이 외국인 감독을 부를 필요가 없다. 능력 있는 감독을 기용해 충분히 지원하면 외국인 감독 이상으로 실적을 낼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태도는 축구협회 내부에 있는 인물이나 이른바 축구계의 야당 인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협회 임원을 맡은 허정무와 '평생 반골' 김호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그들이 '밥그릇'만을 의식해서라거나 실력은 형편없으면서 주제를 몰라서 그러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는 오직 우리 축구가 중요했다. 대표 팀은 반드시 브라질에 가야 했다. 월드컵 무대의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세계다. 탈락이라도 한다면 한 차례 실패에 그치지 않고 우리 축구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고 봤다. 나는 2011년 12월 13일에 칼럼을 썼다. 조광래를 가까이서 지켜본 1993년 독일의 겨울을 기억했다. 2월이었다. 비펠슈테트.

… 브레멘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걸리는 그 곳에 갔을 때 무릎까지 쌓인 눈을 밀어낸 축구장의 푸른 잔디가 오후 햇살에 반짝거렸다. 조광래는 땀투성이 얼굴로 호루라기를 불어가며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그는 프로축구 대우(현재 부산 아이파크)의 코치였다.

그는 정열적인 사나이였다. 독일 팀과 연습경기를 할 때 골을 내주면 피를 토할 듯 고함을 질렀다. 진주 억양이 강해 알아듣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지닌 정열의 데시벨은 충분히 느꼈다. 그는 트레이닝 일지를 영어로 썼다. 'Sprint', 'Force' 같은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 시선을 느끼곤 "뭐 하노?"라며 공책을 접었다.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코치는 경기장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아니, 증명해야 한다. 나는 조광래가 대표팀 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했으리라고 믿는다. 다만 결과가 나빴다. 일본에 0-3으로, 레바논에 1-2로 지면서 조광래는 벼랑 끝에 몰렸다. 절차를 생략한 축구협회의 결정은 유감이다. 하지만 해임하라는 축구 팬의 여론도 없지는 않았다.

대표팀 사령탑이 비었다. 월드컵 지역예선은 쿠웨이트와의 경기(2012년 2월 29일)만 남았다. 지면 최종예선에 못 나갈 수도 있다. 패장은 한국축구 몰락의 주범으로 몰릴 것이다. 언제 칼날이 떨어져 내릴지 모를 단두대. 여기에 머리를 집어넣을 코치는 없다. 있다면 한국 축구를 진정 사랑하거나, 별 볼일 없는 인물이리라. 특히 후자를 경계한다.

조광래를 경질한 과정은 잘못됐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다. 만회하는 길은 한 가지다. 적절한 인물을 절차에 맞게 기용하라. 무조건 월드컵에 가야 한다. 외국인 감독이냐 국내 감독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꿩 잡는 게 매고, 희든 검든 쥐를 잘 잡으면 훌륭한 고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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