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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안정환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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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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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인 1999년 초여름쯤 부산 구덕운동장.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고 경기도 나름 박진감이 있었다. 허나 관중들은 왠지 신이 나지 않았다. 안정환이 출전하지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유니폼도 아닌 하얀 면 티셔츠를 입은 채 그가 경기장에 나타났다. 가볍게 달리면서 몸을 풀었다. 관중석에선 골이 난 것처럼 환호가 터져나왔다. 잔뜩 잘라온 신문지를 뿌려대는 흥분한 아저씨도 있었다. 혹시 후반전에 출전하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유니폼도 입지 않고 있었으니까. 아마 일종의 팬서비스가 아니었던가 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때는, 그러니까 안정환이 부산 대우로얄즈에서 두 번째 시즌을 뛰던 해는 그랬다. 오로지 안정환을 보기 위해서 경기장을 찾기도 했다.
그가 긴 머리를 날리며 경기장을 뛰는 모습은 좀 부조화스러운 것이긴 했다. 안정환 이전에 김주성도 부산 대우에서 머리를 기른 채 뛰었지만 그의 별명은 '야생마', 안정환은 '테리우스'였다. 캔디의 사랑, 소녀들의 로망 테리우스가 거친 그라운드를 누비다니. 더구나 좁은 공간에서 수비진을 헤집는 모습은 '한국 축구'를 넘어선 듯했다.

이제 안정환은 적당히 살집이 붙은 아저씨가 되어, 부상 때문에 혹은 집안 사정 때문에 축구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의 감독이 됐다. KBS에서 방송되고 있는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이다.

매끈한 외모와 달리 그의 삶은 울퉁불퉁했다. 유년시절 편모슬하에 자랐고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K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해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 세리에 A 리그에 진출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결승골을 넣었으나 이탈리아에 있던 그의 차는 부서졌다.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영국 빅리그 진출은 막판에 무산됐고 일본, 프랑스, 독일, 중국 등 리그에서 뛰었지만 과거의 영광은 되찾을 수 없었다.
물론 그는 스스로 말하듯이 행복한 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없는 축구 인생이었다. 내 뜻대로, 꿈꾸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제 테리우스라고 부르기는 어색해졌어도, 지금 안정환은 확실히 더 편안해 보인다. 꿈을 얼마나 이뤘나보다 더 중요한 건 열정을 불태우고 그 이후의 삶을 애정으로 살아내는 것 아닐까. 안정환을 보면서 느끼는 바다. 청춘FC 선수들의 청춘에도 응원을 보낸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의 말처럼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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