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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발견]새 두 마리로 남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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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의 ‘조도(鳥圖, 새)’

김정의 ‘조도(鳥圖,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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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두 마리가 있다. 조선 시대에 흔히 그리던 영모화(翎毛畵, 새와 짐승 그림)의 하나로 일견 평범해 보이는 소품 그림이다. 이른 봄 이제 막 잎이 돋아나는 아까시나무에 앉은 곤줄박이이나 딱새같아 보이는 저 새들의 자세는 영락없이 사춘기 소년소녀의 풋사랑을 닮았다. 몸을 아래쪽에 있는 곤순이에게로 기울이는 바람에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아까시 가지에 앉은 곤돌이는 뭐라뭐라 수작을 붙여보는데 여의치 않다. 아래쪽에 다 느긋이 기울어진 아까시에서 잎사귀 몇 개를 쪼아보던 곤순이는 곤돌이의 말을 다 들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 얼굴과 부리를 배에 파묻고는 딴청을 피운다. 곤돌이 재재거리는 소리와 곤순이의 몸 위를 지나가는 봄바람이 털을 부스스 세워주는 모양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조선 중기의 개혁가 조광조와 함께 사화로 사약을 받은 김정(金淨, 1486-1520)이다. 죽음을 맞은 때의 나이는 서른 네살이었다. 10살 때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다 떼고, 과거에 수석합격했으며, 조광조에 의해 젊은 나이에 형조판서의 자리까지 올랐던 '수재 정치인'이다. 그보다 20년을 더 살고 있지만 아직도 지리멸렬 지지부진인 나를 돌아보면 부끄럽고 쑥스럽지 않을 수 없는, 그의 뜨거운 삶 가운데서 그는 저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김정은 신사임당(1504-1551)과 동시대 사람으로 열여덟 살이 더 많았다. 김정은 당시 관념적인 화조도의 판을 깨고,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구체적인 풍경을 그려 동시대 사람들에게 영감과 충격을 주었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신사임당의 빼어난 초충도도 김정의 화풍이 자극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300년쯤 뒤에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 갔을 때 소주에 살던 호응권이라는 사람이 지니고 있던 조선화첩 하나를 내보여주었다.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다면서 연암에게 고증을 해달라고 한다. 연암은 30점의 그림 중에서 그 맨처음 작품을 보고 '김정의 이조화명도(二鳥和鳴圖)'라고 적어주었다. 새 두 마리가 다정하게 짖고 있었을 그 그림은 아마도 저 소품보다는 크고 더욱 공을 들인 작품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구도나 느낌은 저 소품의 화의(畵意)에서 더 나아갔을 것이다. 후세 사람인 연암 박지원도 훤히 꿰고 있었던 화가 김정과 그의 그림을 우리는 잊어버렸다. 저 그림 한 점이 소중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섬나라에 던져져 외로운 귀신이 되었다/어머니를 남기고 가니 이건 천륜이 아니도다/이 세상을 흘러다니다 내 몸은 죽으니/구름 타고 하늘님 모시는 일 하러 가는 거냐/굴원을 따라 높은 곳에서 산책이나 할까/긴 밤이 어두우니 어느 때나 아침이 오리/붉은 가슴은 타올랐지만 풀섶에 묻히는구나/당당하고 장대한 뜻이 중도에 꺾이나니/아아, 천년만년이여 내 슬픔에 응답하라

투절국혜작고혼(投絶國兮作孤魂)/유자모혜격천륜(遺慈母兮隔天倫/조사세혜운여신(遭斯世兮隕余身)/승운기혜역제혼(乘雲氣兮歷帝?)/종굴원혜고소요(從屈原兮高逍遙)/장야명혜하시조(長夜暝兮何時朝)/경단충혜매초채(烱丹衷兮埋草菜)/당당장지혜중도최(堂堂壯志兮中道?)/오호천추만세혜응아애(嗚呼千秋萬世兮應我哀)
귀양지에서 사약을 받고 비감하게 읊은 시다. 젊은 김정의 피끓는 목소리가 가슴을 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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