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 디자이너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암호명 웨스트민스터, 요원 번호 F-7124.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첩보기관 '압베어'에서 부여한 것이다. 이는 코코 샤넬이 독일 나치의 스파이로 일했다는 근거로 제시됐다.
샤넬이 나치에 협력한 것을 넘어 스파이로 일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사후 40년이 되는 2011년이었다. 미국 언론인 핼 버허건은 당시 출간한 샤넬의 전기 '적과의 동침, 코코 샤넬의 비밀전쟁'에서 1940년 당시 57세였던 샤넬이 독일군 첩보기관 압베어의 요원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했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샤넬은 독일군 장교 한스 귄터 폰 딩크라게와 사랑에 빠졌고 그의 회유로 압베어의 요원이 됐다는 것이다. 폰 딩크라게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히틀러의 오른팔인 요제프 괴벨스에게 직접 보고를 할 정도로 거물이었다. 폰 딩크라게 덕에 샤넬은 나치 수뇌부가 드나들던 파리의 최고급 호텔 리츠 호텔에 머물며 스페인에서 첩보원 모집 활동을 하는 등 실제로 나치 스파이 노릇을 했다고 한다. 또 독일이 영국에 휴전을 제안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샤넬을 보냈으며 이는 그의 옛 애인인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영국의 윈스터 처칠 수상이 친구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샤넬이 압베어의 요원이라는 주장은 지난해 프랑스 국영 방송국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당시 국방부 문서를 공개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두 번째로 샤넬 넘버 5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역사학자인 프랑 페레는 "유대인에게 팔았던 샤넬 넘버 5를 되찾기 위해 나치에 협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경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국을 버린 모양새다. 또 한 편에서는 친지를 구명하기 위해서였다는 추정도 있다. 버허건은 샤넬의 전기에 "독일군 수용소에 있는 한 친지의 석방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썼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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