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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앨런 튜링과 경제致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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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영국드라마 '셜록' 주인공(베네딕트 컴버배치)이 주연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비운의 영국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생애를 다뤘다. 튜링은 1938년 독일군이 사용한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할 수 있는 기계 '봄베'를 만들어냈고 이 같은 성과는 독일 유보트 부대를 괴멸로 이끄는 혁혁한 전과를 낳았다. 오늘날 컴퓨터 발전의 효시인 '튜링 기계'를 고안해내는 성과도 거뒀다.

개인사는 불행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의 징벌을 감수해야 했던 튜링은 1954년 6월7일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튜링이 베어 물은 사과는 미국 애플사 로고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설도 있다. 성인 간에 동의하에 동성애를 처벌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지만 범죄 시하는 경우다.
이처럼 피해자 없는 범죄, 피해자라고 간주되는 자의 동의하의 범죄 등을 과잉범죄화라고 한다. 법학자들은 과잉범죄화의 원인이 과잉형법, 즉 형법 규정이 과잉 입법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국민의 22%, 15세 이상인 경우 26.5%가 전과자로 인원 수를 누계하면 1100만명에 이른다.

김영란법의 경우도 100만원을 초과해 금품을 받은 공무원, 교직원, 언론인은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형법 체계상 '가능성'만으로 처벌할 수는 있지만 이는 추상적인 위험범인(사람 사는 집에 불을 지르는 방화죄)의 경우다. 공무원, 교직원, 언론인이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은 것이 대단히 위험한 범죄라고 봐야하나.

기업관련 범죄 조항은 너무 많고 복잡해 그 집행이 재량에 의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높다.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자본시장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의 처벌 규정이 과징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면 충분할 것인데도 형벌을 적용한다.
단순히 도덕적 비난가능성이 있을 뿐인 행위에 대해 입법기관과 법집행기관이 연합해 처벌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땅콩회항' 사건도 항로에 대해 법령에 정확한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항로를 적극적으로 해석했고 1심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관련법령에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뚜렷한 근거 없이 '항로'를 사전적 의미보다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재계에서 '경제치사(致死)'란 말이 나온 것이 단지 앓는 소리가 아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무리한 검찰 수사, 경직된 법 집행이 피의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법치사의 문제까지 회자되고 있다"며 기업에 대해서도 "무리한 검찰수사나 섣부르게 기업을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낙인찍는 과잉범죄화 때문에 경제치사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만 불어도 교도소 안으로 굴러 떨어진다. 과잉범죄화 현상은 기업가정신을 위축시켜 경제적 손실로 부메랑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을 사법기관도 알아야 할 때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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