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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의 능동성과 김남길의 섬세함으로 뻔한 느와르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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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뢰한' 주연 인터뷰

전도연 [사진=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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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남자는 우악스러움 대신 섬세함을 입었고, 여자는 수동성을 딛고 능동적 주체로 섰다. 영화 '무뢰한'은 이렇듯 한국 느와르의 전형성을 탈피하려 애썼다. 형사 정재곤(김남길)은 투박함과 거칠음을 내려놓았고, 술집 마담 김혜경(전도연)은 남성 권력이 지배적인 세계에서 존엄을 잃지 않았다.

배우 전도연(42)과 김남길(34)을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차례로 만났다. 오승욱(52) 감독과 함께 칸에 다녀온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무뢰한'은 제68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전도연은 "감독님은 혜경을 대상화시키지 않고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고 부딪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 부분들에 나도 동의했고 시나리오 속에서 최소한으로 표현된 혜경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만들려 했다"고 했다.
'무뢰한'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정의와 불의를 가리지 않는 형사 정재곤의 이야기다. 정재곤은 살인자 박준길(박성웅)을 찾기 위해 단란주점 마담으로 일하는 그의 애인 김혜경에게 접근한다. 준길의 감방 동기인 척 거짓말하며 의도적으로 그녀와 가까워진다. 그러나 곧 퇴폐적이고 강인해 보이는 혜경에게서 순수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재곤은 목표와 감정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밑바닥 인생을 헤매던 혜경도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재곤과 혜경 사이의 미묘한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영화에는 이 사실을 확인해줄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관객은 그저 상처난 들짐승처럼 서로의 아픈 부분을 핥아주는 그들을 보며 '그렇다'고 짐작할 뿐이다. 전도연은 "서로가 알아채지 못하지만 분명한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혜경은 재곤이 여자를 모르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혜경도 남자를 모르는 여자다. 이 영화는 소통할 줄 모르는 인간들을 뭉쳐놓은 것 같다"고 했다.

형사와 범죄자의 여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진 까닭은 뭘까? 전도연과 김남길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나약함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재곤과 혜경 둘 모두 강해 보이는 가면을 썼지만 여림을 숨기는 사람들이다. 녹록지 않은 삶은 그들에게 강인함을 강요했다.
닮은 건 재곤과 혜경뿐만이 아니다. 전도연과 혜경도 닮아 있다. 전도연이 3류 인생 혜경을 자신처럼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전도연은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점이 비슷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혜경을 안쓰러워했다.

김남길[사진=백소아 기자]

김남길[사진=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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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은 "혜경에게 재곤은 처음으로 선택하고 싶은 남자"였다고 했다. 늘 선택당하는 사랑만 했는데. 혜경은 재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아 차린다. '북창동 두바이' 같이 이미 그 바닥에서는 촌스러워진 이야기를 멋모르고 뱉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경은 재곤의 서툼과 거짓 이면의 진정성에 이끌린다.

사실 시나리오로만 존재했을 때와 김남길이 덧입혀진 지금의 정재곤은 사뭇 다르다. 전도연은 "김남길씨가 연기함으로써 재곤에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소년 같은 모습이 생겼다"고 말했다. 정재곤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기까지 김남길의 어깨는 무거웠다. 오승욱 감독이 2000년 '킬리만자로' 이후 15년만에 내놓은 복귀작인데다 칸의 여왕 전도연과 대등하게 연기를 펼쳐야 했던 탓이다. 그는 "민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감독님이나 도연 누나가 봤을 때 '정재곤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더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연기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던 때 처음 만난 전도연은 그에게 '밀양' 때 깨달았던 생각들을 들려줬다.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과하게 연기하면 가식적이고 억지스러워보이니 힘을 빼라는 이야기였다. 김남길은 "전보다 힘을 빼는 작업을 했다. 정재곤 자체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다' 표현하기보다는 주변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인물이다. 게다가 영화 자체가 무겁거나 어렵다는 편견이 있을 수 있으니 '편하게 가자'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그 결과 섬세하고 상대에 따라 태도도 바꿀 줄 아는 의외의 느와르 주인공이 완성됐다.

주인공들의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기에 영화에는 여백이 많다. 관객이 생각하고 해석해야 할 여지들이 넘쳐난다. 이 역시 다른 느와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김남길은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고 영화 보면서 나조차 답답했던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묘미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5월27일 개봉.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asiae.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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