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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접속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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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세상을 추억함

‘인사동 술과 문인의 거리에선 협객 방배추(방동규), 소설가 황석영,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을 조선 3대 구라로 친다’는 말이 있다. 이들의 면면으로 보아 풍부한 경륜과 박학다식, 청산유수의 입담으로 좌중을 압도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들과 대척점에는 ‘3대 교육방송’으로 불리는 이어령 박사, 유홍준 박사, 도올 김용옥 선생이 있다’고도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장차 시간이 더 흐르면 ‘뉴 3대 구라’의 후보에 오를 지도 모를 ‘산하’가 펴낸 책이 ‘접속 1990’이다. 산하는 호가 아니라 현직 방송국 PD 김형민 씨의 필명이자 별명이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오래 전부터 ‘산하의 오역’이란 역사 이야기로 애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에게는 탄탄한 역사적 지식과 방송 취재 경험에 곁들이는 해학, 풍자로 마치 ‘구라를 푸는 듯’한 필력이 있다.
‘접속 1990’은 2015년 오늘에 서서 1990년대를 반추한다. 영락없는 ‘응답하라 1990’이다. 산하는 80년대 후반 서울에 있는 대학의 사학과에 입학했다. 90년대 초반 민주화 선봉에 섰던 학생운동권에서 활약했다. 졸업 후 공중파 방송국의 PD가 돼 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다루는 프로그램 제작을 맡아왔다. 때문에 90년대 후반에는 IMF구제금융 사태로 강타를 당한 서민들을 누구보다 생생하고 폭넓게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명백히 과장인 ‘뉴 3대 구라’ 운운은 그의 이런 남다른 전력에서 나오는 광범위한 경험과 역사학도의 눈으로 축적한 지식 때문이다.
‘58358282545119’라는 수수께끼 같은 숫자로 이 책은 시작한다. 저자의 말대로 90년대는 문민정부의 출현으로 속속 달라지는 정치, 사회, 문화의 풍속도 못지않게 산업기술의 변화무쌍으로 ‘순식간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진 물건’들이 유별나게 많은 시대였다. 저 숫자 역시 벌써 사라지고 없는 ‘삐삐’ 암호로 ‘오빠 사랑해 빨리 와서 나를 구해줘’라는 연인들의 메시지다.
삐삐에 뒤이어 천리안과 하이텔로 ‘인터넷 접속의 시대’가 열린다. 오늘날 SNS의 초기 모델이라 할 PC통신이 열렸던 것이다. PC통신이 만들어 내는 신천지 문화는 서태지의 신인류, 강남 야타족, 압구정 오렌지족이라는 키워드들을 양산한다.
“1990년대 중반 PC통신 나우누리에 한총련 회원 전용 게시판(CUG)가 개설됐습니다. 그런데 한총련의 불법시위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나우누리 사무실에 들이닥쳤습니다. ‘한총련 방이 몇호실이야?’ 하면서요.”라는 촌극이 이 정신 없는 변화를 극적으로 대변한다.
‘1994년 6월 16일’ 역시 지금 보니 참으로 섬뜩하다. 주한미국대사가 청와대 안보수석을 만나 미국의 민간인들을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했던 것이다. 북한 핵으로 인해 미국과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벌일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위기였는데 우리는 볼리비아 팀과 겨루는 월드컵 대표팀의 축구경기에 63.7%의 시청률로 몰빵하고 있었다.
무장공비, 삼풍, 서해 페리호, 분신정국, 양심선언, 모래시계, 장군의 아들, 서편제, IMF사태와 눈물의 비디오, 맨발의 박세리와 이단옆차기의 박찬호,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었다는 정주영의 소떼방북에 이르기까지 광폭행보를 이어가는 저자의 펜은 영원한 가객 김광석을 회고하며 발걸음을 멈춘다. (접속1990 / 김형민 / 한겨레출판 / 1만 4천 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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