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으로 지난해 내내 교체설에 시달렸던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IM) 사장이 IM 부문 디자이너들을 모아 놓고 한 소회다. 짧은 한마디에 지난 2년간 신 사장의 고뇌가 배어있다.
수년간 각종 소송전과 비방전을 일삼았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화해한 대목도 맥락을 같이 한다. 두 회사는 자존심을 걸고 기술 유출 문제부터 시작해 '세계 최대', '세계 1위' 타이틀을 놓고 때론 상대방을 비방하고 때론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며 경쟁을 벌였다.
겉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 두 회사의 변명이었지만 실상 소비자들은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넓은 글로벌 시장에서 수많은 경쟁자들 앞에서 두 회사가 고작 마케팅을 위한 몇몇 단어들을 놓고 벌인 싸움은 때론 흥미를 유발하기도 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산 전자제품의 경쟁력은 평생 못 따라잡을 것 같던 일본을 넘어섰다. 이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유럽의 가전 전문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세계 최대', '세계 1위'라는 수식어 대신 소비자들이 감동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다.
소비자들도 많이 똑똑해졌다. 과거 '세계 ○○'라는 타이틀에 혹해 제품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믹서기 하나를 사면서도 꼼꼼히 사용기를 챙겨보고 기능을 비교해 보며 제품을 고른다.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세계 ○○'라는 타이틀이 아닌 실제 제품의 만족도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 소비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오랜 세월 동안 해왔던 자존심 경쟁을 버린 점은 '세계 ○○'이라는 타이틀 대신 소비자들의 엄정한 평가에 귀 기울이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최근 공정위는 귀뚜라미 보일러에 부당광고로 인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귀뚜라미 보일러는 전 세계에서 약 150여 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기술에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독일의 경쟁 업체 대비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보일러 생산량을 두고 '세계 최대' 보일러 회사라며 광고를 해왔다. 중소 업체가 먼저 개발한 제품을 놓고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도 사용해왔다.
이 정도면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제품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세계 OO'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사용할지만 고민했던 결과는 소비자들의 실망으로 다가왔다. 최고의 자리에서 퇴출 위기까지 몰렸던 신 사장이 지난 2년을 두고 "세상은 공정하다"고 말했던 깨달음을 되새겨 볼 때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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