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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논리다] 판사가 ‘위법하다’며 어법 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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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우수제품으로 지정된 물품과 관련 없는 물품에 대해 제재를 받았다는 이유로 우수제품 지정을 취소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어색한 부분을 찾아내셨는지. ‘취소하는 것은 위법하다’에서 ‘위법하다’라는 단어가 잘못됐다. 왜 그럴까. ‘위법하다’는 동사로 ‘법이나 명령을 어기다’라는 뜻이다. 이 뜻을 위 문구에 넣으면 ‘취소하는 것은 법이나 명령을 어기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로 이상하게 된다.
이 문장은 명사 ‘위법’을 넣어 다음과 같이 쓰는 게 맞다.

▶우수제품으로 지정된 물품과 관련 없는 물품에 대해 제재를 받았다는 이유로 우수제품 지정을 취소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한 광고에 판사복을 입고 나온 가수 장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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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하다’는 동사를 굳이 쓰려면 ‘취소하는 것은 위법하는 행위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쯤으로 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쓸 수도 있다.
▶우수제품으로 지정된 물품과 관련 없는 물품에 대해 제재를 받았다는 이유로 우수제품 지정을 취소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행위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앞의 비문은 왜 나왔을까? ‘위법하다’가 ‘적법하다’처럼 형용사라고 착각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적법하다’는 형용사이므로 ‘취소하는 것은 적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는 올바른 표현이다. 그러나 ‘위법하다’는 동사이므로 앞에서처럼 쓰이지 못한다. ‘적법하다’처럼 ‘~하다’로 끝나는 한자어 형용사의 예를 더 들면 ‘부당하다’ ‘합당하다’ 등이 있다.

‘위법하다’의 그릇된 용례는 어디에서 비롯됐나? 언론사 기사를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이 법 관련 자료와 판결문을 직접 인용한 문장이 가장 많다.

▷법제처는 법률이 법인을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법인이 아닌 개인은 지원 대상이 될 수 없어 경로당 회장에게 활동비를 지급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이날 “해당 조례가 군포시장에게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명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시행 여부에 관한 재량권을 침해하고 있기는 하나 특별한 부가요건도 없이 최대치를 시행하고 특정일을 직접 정해 시행토록 함으로써 상위법의 취지에 반해 피고의 판단재량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위법하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 틀린 표현을 쓰자 언론이 이를 옮기며 퍼뜨렸다.

한 가지 오류는 또 다른 오류를 낳는다. 다음 예를 보자.

▷A에 대한 진술조서에 대해 A가 피고인들과 공범으로서 실질적으로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음에도 진술거부권의 고지가 없었다는 이유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였으나….

‘위법하다’를 형용사로 오해하고 ‘위법하게’라는 부사를 만든 것이다. ‘아름답다’가 부사로는 ‘아름답게’가 되는 것처럼 ‘위법하다’도 ‘위법하게’로, 말하자면 ‘적법하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법을 다루는 분들은 어법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걸까.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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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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