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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스타트업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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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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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 지면을 통해 왓시(WATSI)라는 단체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왓시는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이 만든 저개발국의 환자들을 위한 소액기부 플랫폼입니다. 드롭박스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회사들을 키운 와이컴비네이터가 비영리단체를 기르기로 했다는 것은 꽤 놀라웠습니다. 왓시 이후에도 와이컴비네이터는 몇 개의 비영리단체를 육성했습니다. 단체당 수천만 원씩 기부해주면서 말입니다. 그들이 비영리단체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와이컴비네이터는 세상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영리추구 스타트업과 비영리단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와이컴비네이터에 의해 길러진 기업들은 매년 여름과 겨울에 발표회를 갖습니다. 며칠 뒤에 있을 올해의 발표회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흥미롭게도 데모크라시OS라는 아르헨티나 출신 비영리단체입니다. 이 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같은 이름의 플랫폼은 시민들이 활발한 토론을 전개하고 의견을 모으거나 혁신적인 제안을 하는 것을 매우 편리하게 해줍니다. 특히 시민들이 특정법안에 대한 찬반의견을 개진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데모크라시OS는 '직접민주주의 플랫폼'이라고 불립니다.
대의민주주주의 체계는 대표자들이 국민의 뜻을 배반할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데모크라시OS의 창립자들은 기술적인 진보가 직접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단계에 와 있으므로, 이를 실제로 구현해서 대의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거대한 야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뉴욕, 보스턴, 캘리포니아의 여러 지자체들이 이 플랫폼의 시험운영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갑자기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단체가 관심을 끄는 더 결정적인 이유는 이들이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직접 정당을 만들기도 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 단체는 아르헨티나에서 '파티도 드 라 레드(네트워크 정당)'라는 당을 결성해서 201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이 정당의 공약은 아주 단순합니다. 당선되면 데모크라시OS를 통해 다양한 이슈에 대한 시민의 의견을 모은 다음, 지방의회에서 그 의견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것이지요. 2013년 선거에서 이 정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마리화나의 가정재배를 요구하는 등 젊고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이 정당도 대개 급진좌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와이컴비네이터가 아르헨티나의 급진정당에 자금을 댄다고 보고 정치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눈살을 찌푸리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있고요. 그러나 와이컴비네이터 측은 자신들은 데모크라시OS가 혁신을 통해 아주 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용감한 친구들이라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의 창업자들은 자신이 가진 정치 사회적 입장을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자칫 사업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하는 것이지요. 물론 기업의 수익추구 그 자체가 사회에 책임을 충분히 다하는 것이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대로 수익만을 목적으로 창업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나본 많은 창업가들은 자신의 사업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에 대해 나름의 고민과 성찰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금전적인 관심만으로는 창업과정을 견뎌내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뭔가 '뜻'을 품어야 매일 닥치는 도전과 위험을 버티어낼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창업자들이 자신이 품은 뜻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관심을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한층 더 성숙해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와이컴비네이터와 데모크라시OS를 보면서 느끼는 부러움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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