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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뉴스]적십자회비, 꼭 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최종수정 2015.03.06 11:24 기사입력 2015.03.0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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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장] (1) '과연 정말로'라는 뜻의 순우리말 (2) 춘장을 볶은 중국풍 소스. 짜장뉴스는 각종 인터넷 이슈의 막전막후를 짜장면처럼 맛있게 비벼 내놓겠습니다. 과연? 정말로?


▲ 적십자회비 납부 지로통지서.

▲ 적십자회비 납부 지로통지서.



“지로용지가 날아오길래 가스비 이런 건 줄 알고 낼 뻔했습니다. 전화해서 따지니까 행정자치부에서 자료받아 돌린 거라며 안내도 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는 지로용지를 보자마자 좍좍 찢어버리고 있습니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들은 이거 세금인 줄 알고 무조건 내실거에요. 이거 정말 어마어마한 대국민 사기극 아닐까요?”

-인터넷 자동차커뮤니티 ‘보배드림’ 게시판에 올라온 글


[아시아경제 이종희 수습기자] ‘30㎝의 기적’.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에서 회비를 모금하기 위해 각 가정으로 발송하는 지로용지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하지만 적십자회비 모금과 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이 30㎝의 긴 종이를 조각조각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적을 만드는 30cm종이' 캠페인
(출처 : 적십자사 홈페이지)

▲'기적을 만드는 30cm종이' 캠페인 (출처 : 적십자사 홈페이지)

적십자사에서는 ‘집중모금기간’인 연말에 지로용지를 발송합니다. 적십자사는 구호단체이기 때문에 회비를 1년에 여러번 내는 것도 가능하지만, ‘20세~70세의 세대주’라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배송되는 지로용지는 1년에 한번 날아갑니다.

그럼 회비는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지로용지를 보시면 작은 문구로 "적십자 회비는 국민 여러분께서 자진해서 납부하시는 성금입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실제 적십자 홍보 블로그와 사이트에 접속해도 ‘국민이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성금’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즉 법적 의무가 아니며 내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겁니다.

▲한 누리꾼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적십자회비에 대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클리앙' 게시판)

▲한 누리꾼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적십자회비에 대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클리앙' 게시판)


▲적십자회비 지로용지에 대한 부정적 반응. (출처 : 트위터)

▲적십자회비 지로용지에 대한 부정적 반응. (출처 : 트위터)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적십자회비를 ‘의무적으로 내는’ 것인줄 아는 이들이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적십자회비가 사실상 의무성을 가진 ‘준조세(세금은 아니지만 의무적으로 납부해야하는 부담금)’로 오해되는 것은 납부 기한까지 명시해 두고 날아오는 지로용지, 그리고 동네 통장·반장들의 ‘납부독촉’ 때문입니다. 집에서 쉬다 본 적도 없는 통장이나 반장을 만나신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통장과 반장은 회비모금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적십자사의 성격과 적십자회비 모금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아보면, 우선 적십자사는 정부 기관이 아니라 정부가 정한 ‘비영리 특수법인’입니다. 적십자회비는 6.25전쟁 당시 고아와 전상자들의 구호를 위해 대통령 포고문으로 시작된 모금운동으로, 적십자사조직법에 따라 20세 이상 70세 미만이 대상으로 정해졌습니다. 지난 1996년까지는 통·반장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수납해 사실상 세금이나 마찬가지였으나, 이후 지금과 같은 지로 형태로 바뀌면서 의사에 따라 납부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요즘도 통·반장들이나 공무원들이 각 가구나 기업체를 찾아 회비를 모금하는 것은 여전합니다. 적십자사 각 지사가 지역별 할당 모금액을 정하고, 일선 공무원들에게도 책임 할당량이 주어집니다. 받는 입장에서는 공무원이 요구하니 세금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고, 수금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기부금 모집을 금지하는 법이 의식되니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 적십자 회비의 방문 모금을 알리는 공고. 지역 통반장이 아직도 수금 역할에 동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트위터 계정 '대치동나팔')

▲ 적십자 회비의 방문 모금을 알리는 공고. 지역 통반장이 아직도 수금 역할에 동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트위터 계정 '대치동나팔')



문정림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지로용지를 만들고 발송하는데 무려 92억원이 사용됐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지로용지가 국민에게 배포된 셈입니다. 또 모금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지급된 금액이 2009년~2012년 동안 62억원이나 됩니다. 통장과 반장들은 사실상 적십자에게 고용된 상태였던 겁니다. 반드시 회비를 걷어야할 이유가 있는 거죠. 그리고 이들의 독촉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짜증을 유발하는 원인이었을 겁니다.

이 때문인지 적십자사는 매년 모금액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습니다. 적십자사가 발표한 2013년도 사업실적 및 결산(2014년 3월 발표)자료를 살펴보면 이 해 442만명으로부터 517억원을 모금했으며, 2007년부터 7년 연속 목표액을 넘어선 것으로 돼 있습니다.

▲김광진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남긴 글.
(출처 : 김광진 의원 트위터)

▲김광진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남긴 글. (출처 : 김광진 의원 트위터)



그럼에도 적십자사는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방만경영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적십자병원이 매년 적자를 내면서도 과도한 성과급을 지급해 온 것, 직영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에게 폭리를 취하다 적발된 것 등이 드러났습니다. 또 지난해 ‘보은인사’란 비난을 받으며 총재로 취임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최근 5년간 단 한 차례도 적십자회비를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이 “우리가 내는 회비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다”고 여기는 이유입니다.

적십자사가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기부금은 ‘자발적’인 형태를 가져야 합니다. 기부는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적십자 회비는 기부라는 이름만 가진 강제납부에 가깝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지로용지가 날아오고 누군가에게 독촉을 받아야 한다면 충분히 강제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로용지를 받을 지 여부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들로부터 진정한 자발적 납부를 받는 적십자로 변신하기를 기대하기엔 아직 이른 걸까요?

이종희 수습기자 2paper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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