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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사라진 칼 딤 벡, 그리고 친일파 기념물 스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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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레저 부장

허진석 문화스포츠레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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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맵'으로 들어가 '스트리트 뷰'를 실행하니 2008년 9월이다. 남색 풀오버 아니면 점퍼를 입고 배낭을 멘 금발(이라기보다는 갈색에 가까운) 학생이 독일체육대학교(Deutsche Sporthochschule Koelnㆍ흔히 '쾰른체대')로 들어가려 한다. 그가 타고 왔을 자전거도 보인다. 학생 주변에 일렁이는 햇살로 보아 오전인 듯하다.

나는 지난해 7월에 내가 속한 체육 관련 학회에 제출할 논문 자료를 검색하기 위해 독일체대에 갔다. 저 학생처럼 현관을 통과해 중앙도서관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독일의 문헌학자와 도서관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들은 "알아보겠다" 또는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정말 알아보고 찾아보았나 보다. 내가 부탁한 자료를 대부분 준비했다. 또한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넘겨받은 자료를 들고 나와 학생식당에서 칠면조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학교를 떠나기 위해 다시 저 학생이 들어가려는 현관 앞에 섰다. 잠시 코끝이 찡했다. 나는 23년 전에 처음 이곳에 갔다. 겨울이었다.

젊은 스포츠 기자는 그때 '기회가 있다면 이곳에 와서 제대로 스포츠와 체육을 배워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회는 10년 뒤에 왔다. 회사에서 해외 연수를 보내주었는데, 당연히 독일로 갔다.

사진 속의 학생은 자전거를 타고 넓지는 않지만 정감이 넘치는 가로수 길을 달려왔을 것이다. 내가 한일월드컵 취재를 마치고 쾰른에 갔을 때 이 길은 칼 딤 거리(Carl Diem Weg)였다. 그러나 지금은 암 슈포르트파크 뮝거스도르프(Am Sportpark Muengersdorfㆍ'뮝거스도르프 스포츠공원 앞길' 정도?)라고 부른다. 딤은 현대 체육사를 공부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이름이다.
1882년 뷔츠부르크에서 태어난 체육학자이자 행정가로 독일 체육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고 1947년에는 쾰른에 체육대학을 설립했다. 그가 중심인물로 활동한 '황금계획(Golden plan)'은 독일이 사회체육 선진국이 되는 데 기여했다. 딤의 공을 기려 독일 여러 도시가 그의 이름을 길에 새겼다. 독일체육대학 앞길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딤은 나치정권에 협력한 전력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그가 조직위원장을 맡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2차대전이 끝난 뒤 가장 정치적인 올림픽으로서 스포츠를 선전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오명을 썼다. 1945년 봄에 그가 베를린에서 청소년들을 상대로 참전과 희생을 종용한 연설은 일제 학도병과 징용, 위안부 참여를 독려한 일제강점기 친일인사들의 연설이나 신문 기고문을 연상케 한다.

나치를 위한 부역에는 대가가 따랐다. 1948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딤의 IOC위원 취임을 거절했다. 그는 IOC가 정한 신사(gentleman)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딤의 이름이 들어간 거리가 있는 도시에서는 계속해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적잖은 도시가 길에서 칼 딤의 이름을 지웠다. 쾰른시의회는 2006년 3월에 칼 딤 벡을 암 슈포르트파크 뮝거스도르프로 개명하기로 결정했다.

흔히 과거의 인물에 대해 공과 과를 구분하되 공은 계승하고 과는 교훈으로 삼는다고 한다. 사뭇 현학적인 이 말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 친일 부역자나 독재에 협력한 자를 용서하고 복권하는 한편 공을 과장해 과를 지우는 암수(暗數)에 불과하다.

딤이 살아 있었다면 한국을 부러워했으리라. 칼 딤 벡이 대한민국에 있었다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공부 많이 했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대학이다. 3ㆍ1절 95주년인 지난 1일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무려 스무 개 대학에 친일 인사를 기리는 기념물이 있다.





허진석 문화스포츠레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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