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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구안자(具眼者)(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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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인의 '어우야담'에 구안자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어우’는 장자에 나오는 말로 실없는 소리라는 뜻이다. 구안자는 눈을 갖춘 사람이란 의미다.

큰 값을 부르는 그림 하나가 있어서, 세상이 떠들썩했다. 한 노인이 아이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마치 살아있는 듯 생기가 돌고 그 뜻 또한 흐뭇하여 모두가 갖고 싶어하였다. 그때, 강정대왕이라고 불린 성종임금이 등장한다. 그는 그 그림을 보더니, 한 마디로 촌평을 한다.
"이 그림은 사기야.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는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입이 벌어져야 진짜인데, 이 그림 속의 노인은 입을 다물고 있지 않소?"

이 품평이 나온 뒤로 그림 값은 뚝 떨어졌고, 아무도 그 그림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명품이 되기도 하고 졸작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옛사람들은 감식안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감식안을 두려워하고 존경했다. 추사가 당대를 쩌렁쩌렁 울린 까닭은, 글씨나 그림의 재능, 혹은 문장과 학식 때문이 아니라, 칼날같은 감식안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글씨나 그림이 하나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가 글씨나 그림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췄기 때문이다. '눈'이 없이 붓이 갈 수 없으며, 눈이 없는 재능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없다. 음악에는 귀가 필요하고, 대장금에는 혀와 코가 필요하듯, 서화와 문장에는 눈이 필요하다.
시를 읽었다고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없으며, 시를 이해했다고 모두 같은 수준의 이해라고도 할 수 없다. 뛰어난 시가 향한 가파르고 황홀한 접점을 통과한 눈이 교신할 수 있는 그 신의 영역이 시의 정수인지 모른다. 눈이 있어야 생각이 자라며, 눈이 있어야 창의와 통찰이 꿈틀거린다. 눈을 갖춘 자가, 결국 세상을 움직인다.

알아야 보이며 보여야 안다는 옛 사람의 상식이, 요즘은 드문 지혜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어두운 자들이 허투루 읽어낸 것들이 지식과 예술처럼 돌아다닌다. 당대의 구안자가 목마르게 그리운 까닭은 이 때문이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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