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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다'의 재발견…시간의 무게 지닌 중견들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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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곤, '신으로부터의 키스', 2009년

변종곤, '신으로부터의 키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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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혜, 무제,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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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곤 화백, 길거리서 모은 골동품에 유화 채색...사회적 비판의식 녹여
양주혜 작가, 오래된 누빔 천·타월·이불에 알록달록한 색점, 바코드 입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오래되고 낡은 물건에 천착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종류의 물건에 푹 빠져 일생을 걸고 세상 곳곳을 누비는 수집광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물건에 영혼을 부여하고, 심지어는 '○○○와 결혼했다'고 서슴지 않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추억이 깃든 물건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만큼 그 물건이 지닌 시간성의 무게는 늘어나고 더 이상 '그냥 물건'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일까. 최근 만난 두 명의 중견 작가들은 각자 전혀 다른 형식의 작품들을 만들어 보이고 있지만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틋함은 동일하다. 한 사람은 30년 넘게 길거리에서 벼룩시장에서 모아온 다양한 골동품 위에 유화로 그림을 그리며 다른 한 사람은 누군가 남기고 간 캔버스 천과 낡은 타월 등을 재활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화를 남긴다.
◆변종곤 화백의 '리콜렉션(Re:collection)'전= 변종곤 화백(67)은 서른세 살에 미국 뉴욕으로 떠나 꼬박 33년이 흐른 뒤인 작년부터 국내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열고 있다. 최근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에선 바이올린이나 첼로, 타자기, 양철통, 와인병, 냉장고, 인형 등 무수한 종류의 골동품을 캔버스처럼 활용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리콜렉션'이란 전시제목처럼 낡은 오브제들은 작가가 추구하는 '자유로움'과 '변용' '사회적 비판의식'들이 녹여진 작품으로 재창조됐다. 수백 년 세월을 지닌 첼로의 몸통에는 진한 키스를 나누는 신부와 수녀의 모습이 보이고, 뒷배경으로는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우주왕복선이 그려져 있다. 키스 장면은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된 베네통 광고를 패러디한 것으로 '모든 사랑은 다 용서가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작품에 대한 영감과 오브제들은 여행을 통해 모여지기도 한다. 미국 남서부의 뉴멕시코주 아리조나 인디언들을 만나고 돌아온 그는 그곳에서 수집한 옛 인디언들의 사진들을 조합해 그림을 그렸다. 가운데 인물은 샤넬 향수를 들게 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이 터전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모습과 대륙 위를 지배하는 물질만능주의를 지적하는 작품이다.

변 화백은 원래 대구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30대 초반에 동아일보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할 만큼 젊은 시절 화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되레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나야했던 이유가 됐다. 작가는 유신 말기이던 당시 철수된 미군 비행장을 소재로 그린 것이 빌미가 돼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혔고, 정치적 탄압과 감시로부터 도망치듯 뉴욕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 당시 뉴욕 미술계는 팝아트가 떠올랐던 시기였고, 작가로서 생각할 때 뉴욕이야 말로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느꼈죠." 혈혈단신 뉴욕 할렘가로 무작정 들어간 그는 정착 초기 한 생선가게의 인부로 일하면서도 그리는 일을 지속했다. 그때 누군가 쓰다 버린 물건들에 눈길이 갔고, 그 '폐품'들을 모아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네모난 캔버스는 감옥 같았다. 홀로된 외로움과 가난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시기 주인을 잃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행운이었을까. 그 생선가게 인부에게 어느 날 한 화랑주가 가게 안에 걸린 그림이 누구 작품인지 물었다. 이때 부터 변 화백은 뉴욕에서 작가로 활동하게 되며, 그의 독특한 작품들은 유수 미술관에서도 러브콜을 던질 만큼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리고 7년 뒤 88올림픽에 맞춰 고(故)백남준 작가와 함께 고국 땅을 밟은 뒤로는 국내에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는 2월15일까지. 서울 성수동 서울숲 더페이지갤러리. (02)3447-0049.
변종곤, 굿 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2006년.

변종곤, 굿 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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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혜, 무제, 2014년.

양주혜, 무제,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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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혜 화백의 '시간의 그늘'전= 2006년 '광화문 제모습찾기' 공사기간 동안 그 앞에 세워졌던 가림막 작업 등 공공미술작가로 더 잘 알려진 양주혜 작가(여·60)가 오랜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다. 대형 설치물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양 작가의 알록달록한 색점과 바코드 형식의 추상화가 직물 소재의 타올, 방석, 이불, 침대보 같은 대상 위에 그려져 있다. 이 외에도 캔버스를 대신해 이미 색칠이 된 캔버스천을 재활용하거나, 과거에 작가가 인도에서 구입한 전통문양의 천에 색점을 입히는 작업들도 보인다. 양 작가는 "오래된 손누빔 천을 다시 누비기도 한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시간을 간직한 천들이다"며 "옛 것 위에 작업을 얹히는 것이 좋다. 나는 내 흔적을 그렇게 강하게 남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철학적인 질문들로 가득하다. "색채는 빛의 흔적이다"라는 작가에게 시간과 빛이라는 소재는 가장 큰 관심사였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수많은 색점을 만들고 덧입히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형태들에 이어 작가 스스로 각각의 색에 음정을 입혀 '색의 악보'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또한 '색점'에서 비롯된 관심은 '문양'으로 옮겨가며 바코드 형식의 작품들이 제작됐다. 양 작가는 "문양은 문명의 형식과 구조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20세기에 생긴 바코드가 'QR 코드' 등으로 더욱 진화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동안 주로 공공미술에서 활동해 온 연유에 대해 작가는 "노동과 미술작업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또한 사실 젊은 작가들과 달리 우리 나이대 화가들에게 전시기회가 많지 않기도 하다"며 "무엇보다 예술이 돈으로만 환원되는 그런 분위기가 싫다. 그래서 변두리에 남아있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1980년대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의 유학시절을 보낸 작가는 당시 공공미술작품이 아닌 캔버스 작품으로 프랑스 주요 일간지 르몽드 등에서도 주목했던 작가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문화관광부 청사, 아르코 미술관, 광장 등 공간과 함께 바닷가 백사장, 버스, 전철, 기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공미술작품을 남겼다. 2월 25일까지.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갤러리. (02)310-1924.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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