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곤 화백, 길거리서 모은 골동품에 유화 채색...사회적 비판의식 녹여
양주혜 작가, 오래된 누빔 천·타월·이불에 알록달록한 색점, 바코드 입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오래되고 낡은 물건에 천착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종류의 물건에 푹 빠져 일생을 걸고 세상 곳곳을 누비는 수집광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물건에 영혼을 부여하고, 심지어는 '○○○와 결혼했다'고 서슴지 않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추억이 깃든 물건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만큼 그 물건이 지닌 시간성의 무게는 늘어나고 더 이상 '그냥 물건'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일까. 최근 만난 두 명의 중견 작가들은 각자 전혀 다른 형식의 작품들을 만들어 보이고 있지만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틋함은 동일하다. 한 사람은 30년 넘게 길거리에서 벼룩시장에서 모아온 다양한 골동품 위에 유화로 그림을 그리며 다른 한 사람은 누군가 남기고 간 캔버스 천과 낡은 타월 등을 재활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화를 남긴다.
변 화백은 원래 대구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30대 초반에 동아일보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할 만큼 젊은 시절 화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되레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나야했던 이유가 됐다. 작가는 유신 말기이던 당시 철수된 미군 비행장을 소재로 그린 것이 빌미가 돼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혔고, 정치적 탄압과 감시로부터 도망치듯 뉴욕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 당시 뉴욕 미술계는 팝아트가 떠올랐던 시기였고, 작가로서 생각할 때 뉴욕이야 말로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느꼈죠." 혈혈단신 뉴욕 할렘가로 무작정 들어간 그는 정착 초기 한 생선가게의 인부로 일하면서도 그리는 일을 지속했다. 그때 누군가 쓰다 버린 물건들에 눈길이 갔고, 그 '폐품'들을 모아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네모난 캔버스는 감옥 같았다. 홀로된 외로움과 가난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시기 주인을 잃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행운이었을까. 그 생선가게 인부에게 어느 날 한 화랑주가 가게 안에 걸린 그림이 누구 작품인지 물었다. 이때 부터 변 화백은 뉴욕에서 작가로 활동하게 되며, 그의 독특한 작품들은 유수 미술관에서도 러브콜을 던질 만큼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리고 7년 뒤 88올림픽에 맞춰 고(故)백남준 작가와 함께 고국 땅을 밟은 뒤로는 국내에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는 2월15일까지. 서울 성수동 서울숲 더페이지갤러리. (02)3447-0049.
◆양주혜 화백의 '시간의 그늘'전= 2006년 '광화문 제모습찾기' 공사기간 동안 그 앞에 세워졌던 가림막 작업 등 공공미술작가로 더 잘 알려진 양주혜 작가(여·60)가 오랜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다. 대형 설치물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양 작가의 알록달록한 색점과 바코드 형식의 추상화가 직물 소재의 타올, 방석, 이불, 침대보 같은 대상 위에 그려져 있다. 이 외에도 캔버스를 대신해 이미 색칠이 된 캔버스천을 재활용하거나, 과거에 작가가 인도에서 구입한 전통문양의 천에 색점을 입히는 작업들도 보인다. 양 작가는 "오래된 손누빔 천을 다시 누비기도 한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시간을 간직한 천들이다"며 "옛 것 위에 작업을 얹히는 것이 좋다. 나는 내 흔적을 그렇게 강하게 남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동안 주로 공공미술에서 활동해 온 연유에 대해 작가는 "노동과 미술작업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또한 사실 젊은 작가들과 달리 우리 나이대 화가들에게 전시기회가 많지 않기도 하다"며 "무엇보다 예술이 돈으로만 환원되는 그런 분위기가 싫다. 그래서 변두리에 남아있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1980년대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의 유학시절을 보낸 작가는 당시 공공미술작품이 아닌 캔버스 작품으로 프랑스 주요 일간지 르몽드 등에서도 주목했던 작가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문화관광부 청사, 아르코 미술관, 광장 등 공간과 함께 바닷가 백사장, 버스, 전철, 기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공미술작품을 남겼다. 2월 25일까지.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갤러리. (02)310-1924.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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