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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안고수비(眼高手卑), 눈은 높고 손은 낮고(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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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높고 손은 낮다. 육체가 그렇다는 얘기다. 눈은 얼굴에 붙었으니 높고 손은 어깨에서 내려온 팔뚝의 끝자락에 붙었으니 자연스런 포즈에선 낮을 수 밖에 없다. 물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손을 들어 눈 위로 올리기만 하면, 금방 수고안비(手高眼卑)가 된다.

눈은 인식이란 정신작용을 위한 핵심적인 감각기관이다. 인식만 하는 게 아니라, 판단이나 꿈을 꾸는 것에도 눈은 큰 몫을 한다. 세상의 많은 문제는 관점이나 시각으로 구체화된다. 보는 문제는 세상과 사물과 인간을 이해하는 너무나 중요한 틀이다. 손은 쥐고 당기고 밀고 끌고 긁고 후비고 털고 만지는 것이지만 때론 뭔가를 가리키기도 하고 악수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한다. 그것이 하는 대개의 일들은 수고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하는 '노가다'스러운 일들의 대부분은 손이 한다. 손은 기술을 낳는다. 정교하고 빼어난 기술은 바로 손에서 나온다. 큰 손은 대범하게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을 지닌 존재에게 붙여진다. 쪼막손은 그 반대이다. 손은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는 실력을 말하기도 한다.
안고수비는, 가치를 품평하는 눈은 높은데 그것을 실제로 생산하고 행위하는 기술의 손은 낮음을 비웃는 말이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 이것저것 해설을 늘어놓으며 평가를 할 수 있겠는데, 정작 자신이 일에 임하면 젬병이 되고마는 서글픈 경우이다. 왜 이렇게 신체와 정신이 따로노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뭔가 깨달은 거 같았는데, 실제 상황을 만나면 앞이 캄캄해지고 진땀만 나는 건 왜일까.

남의 것을 보고 높아진 눈이 손으로 내려오려면, 체득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체득은 제 몸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지, 외래에서 수입한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원리를 세우고 스스로 실험하며 자기 스토리를 키워가야 한다. 장자에 등장하는 백정은 칼 쓰고 손 쓰는 일이 신의 경지에 다다른 존재이다. 그는 그냥 칼 쓰고 손만 쓰지 않았다. 칼 쓰는 일과 손 쓰는 일의 원리를 깨우쳤다. 고기의 결과 칼의 날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통찰하여 그 결을 타고 날이 지나다니는 것을 익혔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눈'과 '자기의 손'이다. 자기의 눈이라야 자기의 손이 제대로 움직인다.

자기의 눈이 없으면 자기의 손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 이것이 세상 달인들이 깨달은 원리같은 것이 아닐까. 무엇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남의 눈에서 자기 눈으로 시점을 옮겨오고, 그것에 바탕하여 솜씨를 키우는 것 밖에 없다. 남이 옳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자기에게도 옳은 것은 아니며, 이미 세워진 원칙과 가치체계와 평가들이 자기에게도 모두 통용되는 잣대일 수 없다. 세상에 비천한 기술은 없다. 비천한 사용이 있을 뿐이다. 세상에 비천한 눈은 없다. 남의 높은 눈을 바라보며 찬탄과 질투를 늘어놓는 비천한 곁눈이 있을 뿐이다. 네가 하고 있는 일이, 네 자신이 되도록 하라. 그것이 안고수비가 귀띔하는 적실한 금언이 아닐까.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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