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철공소 골목에서 청년창업가 한 명을 만났다. 그의 아이디어 상품은 다소 섬뜩한 것이었는데, 좀도둑들이 아파트 가스관을 타고 침입한다는 데 착안해 가스관을 아예 '철제 가시'로 두른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사진을 검색해 확인해보라. 정말 무섭게 생겼다). 박 대통령은 그것을 보고 "아이디어가 범죄 예방도 하고 사회를 정화시키는 데도 기여하는 바가 큽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정화라는 단어를 끄집어 낸 것에 대단한 의미를 두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저 그렇게 대충 넘기기에 그 단어가 주는 두려움은 작지 않다. 우리는 지난해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서부터 그런 기미를 보았다. 부흥이나 융성이란 단어가 주는 '느닷없음'에서 시작된 이 느낌은 국가개조에 이르러 상당히 구체화됐다. 이후 등장한 적폐, 혁파, 원흉 그리고 최근의 단두대까지, 이런 단어들을 가로지르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국가개조라는 말이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라며 한 야당 국회의원이 문제 삼자 박 대통령은 그것을 '국가혁신'이라고 바꿔 쓰기 시작했다.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의미의 개조와 달리, 혁신이란 말에는 내적ㆍ외적 에너지를 융합해 스스로 진화를 모색한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두 단어가 담고 있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자꾸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토를 달게 되는 건 언어가 사람의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 때문이다. 더욱이 지도자의 언어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뜻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진 정화나 개조와 같은 말들에서 풍겨나오는 암울한 무엇, 국민을 통제하고 감시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가치관 혹은 그렇게 봐야할 정치적 필요성, 그것은 가시돋친 가스관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들이며 우리가 그것에 점점 길들여져 가고 있음은 더욱 두려운 일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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