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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취향의 품질(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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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미스터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구나, 어느 구석엔가 이해되지 않는 영원한 빈간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보편으로 불려나오지 않는, 특유의 개성이나 신념이 있다는 것. 그런 점이, 인간이 하나 이상으로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모든 소통은 관계 저쪽의 미지에 대한 갈증을 없애려는 시도이지만, 아무리 철저한 소통이라도, 저 남은 빈간에 대해서는 그저 목격자로 만족해야 한다. 자기의 내부에 들어있는 무엇인가가 그에게도 미스터리일테니까.

B는 1988년 이후 내게는 '실종된 존재'였다. J기획 시절의 짧은 추억으로 발자국은 끊겨 있었다. 그리고 문득 20여년이 지난 뒤에야 그 발자국이 문득 시야 속으로 들어오며, 건재하고 있는 옛 동기의 근황으로 붙잡혔다. CF감독을 했던 그는, 다큐 쪽으로 발을 옮겨 치열하고 명성있는 삶을 살았다. 브라이트한 그의 머리는, 재테크 위에서도 빛을 발했는지, 취향의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여유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고, 오직 음향기기를 위해 아파트 몇채 값을 쏟아넣기도 했다. 양평의 음악실은 그 결과로 생겨난, 비범한 공간이다. 그의 잔디밭 마당을 거니노라면 간단히 질문이 발밑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왜 사는가. 먹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의, 심각한 차이가, 그간 불감증 속에 숨어 있었던 셈이다.
나는, 돈이 내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안다. 가끔은 무심하고 무정하고 무안하게 사람 망신을 주기도 하는 고약한 구석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녀석도 저렇게 친구처럼 지내는 이가 있구나 싶어서, 그를 바라보면 신기할 뿐이다. 그라고 돈이 말을 잘 듣기만 하랴 마는. 세상의 온갖 가수와 연주자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현장감 펑펑 쏟아지는 소리를 뿜어내는 선진국 앰프와 스피커와 케이블 앞에서, 취향의 품질은 아무래도 쌓은 돈의 높이에 비례하는 것 같다는 섭섭한 말을 오래 곱씹는다. 그 돈을 이렇게 쓰다니...나로선 영원한 미스터리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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