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희극인 한무 "내 두 번째 고향, 충무로 뒷골목"(인터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한무 /채널A 제공

한무 /채널A 제공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장용준 기자]서울 중구에 자리한 충무로는 '옛날스러운' 동네다. 어쩌면 그 '스럽다'는 말도 충무로가 지나온 과거를 표현하기엔 부족할지도 모른다. 60년대 경제부흥이 시작되면서 문화에 관심이 쏠렸고, 이에 힘입어 대한민국의 희극인·가수들이 모여 공연을 준비하던 총 집결지가 바로 충무로였다. 한국 연예계의 모태인 셈.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몇 방송계 원로들은 충무로 역사의 산 증인이다. '붕어'로 유명한 코미디언 한무 역시 그중 하나. 아시아경제는 한무가 최근 충무로의 한 장소에서 자주 사우나를 즐긴다는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뗐다. 이윽고 명보아트홀 인근에서 그를 만나 옛 동네 충무로에 얽힌 희극인 한무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조금 오래된 연예인들은 다 충무로 출신이지. 한국전쟁 끝나고 50년대부터 항상 바글바글했어. 전성기에는 다들 아침에 눈만 뜨면 충무로로 나가는 게 일상이었지. 가수든 개그맨이든 배우든 모두 여기 모여서 쇼를 구성해서 그걸 가지고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는 거야. 우리같은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지냈지."

하지만 세월 앞에 세상이 변해버렸다. 70년대 초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생겨나가 시작하며 연예계의 중심이 충무로에서 방송가로 이전됐기 때문. 한무도 문화방송 MBC의 '청춘만세'란 프로그램으로 데뷔하며 충무로에 발길을 끊게 됐다. 그렇게 서서히 충무로는 많은 이들에게 과거의 장소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예전엔 한국의 할리우드가 여기였어. 스카라극장·명보극장은 그야말로 연예계의 메카였지. 그 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뜨겁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변해서 아쉬워. 살짝 허전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계속 당시 생각을 하며 찾게 되니 신기하긴 해. 요즘은 사우나만 간간이 다니고 있지."
한무에게서 사우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뜨뜻한 증기 속에서 땀을 빼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의 얼굴에 겹쳐 보이며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기자가 한무를 마주친 장소 또한 사우나가 아닌가. 유독 이 장소에 발걸음을 끊지 않는 그가 혹시나 흥미로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한무 /채널A 제공

한무 /채널A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

"중독이야 중독. 외국에 나가더라도 사우나에는 꼭 들르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밥은 안 먹어도 땀은 빼야하거든.(웃음) 충무로 사우나를 계속 찾는 이유? 조용하고 물도 좋고, 무엇보다 여기서 일하는 이발사가 마음에 들거든. 이발사가 중요한 것 같지. 내가 말 하는 그대로 잘 잘라주는 사람이라 계속 여길 오게 되네."

한무는 엉뚱하게 이발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의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에서 느껴진 것은 개그맨 특유의 익살뿐만이 아니었다. 70세 가까운 나이에도 어린아이 같은 눈망울을 간직한 한무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을 잠시 내비쳤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충무로를 오가지. 여기 사우나도 마찬가지고. 그 속에 인간냄새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어. 나는 좀 서민적이거든. 방송에서도 '나는 연예인입네'하며 행동한 적이 한 번도 없어. 항상 찾아주는 사람들을 고맙게 생각하지. 그래서 그런지 여기 직원들도 다 잘해줘. 가끔 내 건강을 너무 염려해서 잔소리를 하는 것 빼곤.(웃음)"

한무에게 충무로는, 그리고 이 장소는 단순한 동네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도 같은 그리움. 그런 종류의 감정에는 한무의 고향이 북한 평양이라는 사실도 한몫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 때 실향민이었을 그에게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연예계 동료들의 아지트인 충무로는 '제2의 고향'이 아니었을까.

"우리 가족은 해방 이듬해에 내려왔지. 그쪽 체제가 싫었어. 물론 나뿐만이 아니야. 당시 유명한 사람들 중에 북한 출신이 많았어. 송해 이상벽 등등 다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었지. 그들이 다 충무로에 모인거야. 정말 다양한 일들을 겪었지. 함께 울고 웃고 모든 걸 나눴어. 다시 생각해도 그리운 추억뿐이지. 난 왜 이렇게 사람이 좋은지 몰라."

인터뷰를 마친 한무는 "다른 약속이 있다"라며 떠날 채비를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연예계 후배들과 저녁을 함께 먹기로 약속을 잡은 뒤였다. 한무는 특유의 밝은 표정과 함께 짧은 인사를 건네고 유유히 문을 나섰다. 충무로 거리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등은 사람 냄새가 짙게 나는 충무로 터줏대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장용준 기자 zelra@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뒷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