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한 노처녀의 빤스로 가득 차 있다. 팬티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빤스라고 말한다. 빤스라는 말에 녹아있는 기묘한 촌스러움과 수치감과 야함과 천박스러움과 당혹감과 애틋한 꽃무늬를 '팬티'로는 번역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출판사의 말단 직원인 브리짓은 바람둥이 편집장 다니엘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녀가 그의 시야에 들어가게 되는 건 빤스가 보일락 말락 하는 치마 때문이다. 다니엘은 이메일을 보내 치마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런 다니엘에게 항의 표시로 더 짧은 치마와 함께 브래지어가 내보이는 상의를 입고 출근한다. 그러나 곧 다니엘의 작업은 먹혀들어 둘은 가까워지게 된다.
파티가 있던 날 아침 브리짓은 두 개의 빤스 사이에서 고민한다. 뒤룩뒤룩 삐져나오는 살을 감출 수 있는 몸뻬형 빤스를 입을 것인가 아니면 애인과의 정사 때 입음직한 야한 검정 망사 빤스를 입을 것인가. 일단 파티라는 외형부터 해결해야 했던 그는 몸뻬를 택한다. 그러나 다니엘의 작업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그날 밤 그 몸뻬로 일을 치뤄야 하게 됐다. 다니엘은 놀라면서 말한다. 이게 뭐야? 그러면서 킥킥 웃는다. 한번만 더 보여줘. 안돼요. 둘은 껴안은 채 버둥거린다.
빤스의 잔혹사는 계속 된다. 야외에서 벌어진 가장무도회에 브리짓은 토끼귀를 달고 까만 원피스수영복을 입고 나간다. 엉덩이에는 토끼 꼬리 한 움큼을 달았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그 모임은 가면파티가 아니라 정장을 차려입는 가든 파티로 정정된 모양이다. 남들 다 멀쩡하게 입은 자리에 그녀는 토끼 꼬리를 단 빤스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마지막 빤스는 그녀의 제대로 된 연인인 마크와의 사이에서 등장한다. 마침내 두 사람이 베드신을 하게 됐을 때 브리짓은 자신이 현재 입고 있는 것이 뱃살 누르기용 몸뻬임을 깨닫는다. 마크가 입맞춤을 하려 하자 그녀는 급히 제동을 걸고는 옷을 좀 갈아입어야겠다고 뛰어나간다. 그녀가 야한 검정 빤스로 갈아입는 동안 마크는 브리짓의 일기를 펼쳐보게 된다. 거기엔 마크에 대한 온갖 욕설과 짜증을 담아놓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말. "나는 마크같은 인간이 싫다." 한편 빤스를 올리고 있던 브리짓은 저쪽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급히 집을 나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당황한다. 창을 내다보니 저쪽에 마크가 성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브리짓의 빤스가 이토록 각광을 받은 까닭은 샤론 멕과이어 감독의 의욕이 개입했을 것이다. 빤스를 통해서 뭔가를 보여주자는 것. 그게 뭘까. 그 퉁퉁한 서른두살 노처녀의 엉덩잇살이 삐져나오는 빤스의 천연덕스러움과 낙천성. 그것은 어쩌면 생의 자연스러움과 현대적 권태가 뒤섞인 '에로틱' 퓨전물이 아닐까. 성기를 싸안고 있는 야한 포장지에 대한 금기와 유혹의 기표들이 잠깐 휘발하고, 대신 장난스럽고 도발끼 가득한 화면 속에 인간적임의 내부로 드러나는 재미. 거기에 빤스를 열심히 배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 정말 아주 열심히, 이 여자의 빤스만 보고 있어도 영화 속을 흐르는, 쪽팔리면서도 애틋한 브리짓의 기분을 반쯤은 이해하게 되는, 바로 그 매력이 이 영화의 즐거운 알맹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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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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