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럴까. 한글은 소리를 그대로 적은 문자이다. 말하는 대로 적는 글자라는 얘기이다. 콜록콜록은 기침할 때 입에서 내는 소리를 흉내낸 것이다. 으흠으흠도 소리이며 에헴에헴, 오홈오홈, 흠흠도 받아적은 소리이다. 인간이 이 우주상에 몇 명 없었을 때에, 그들은 처음에 본 사물들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맨처음 붙인 글자들은 모두 한 글자이다. 왜 그랬을까. 한 글자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해, 달, 별, 물, 불, 땅, 뫼, 길, 숲... 그리고 나, 너, 그...그리고 몸에 붙은 것들, 눈, 코, 입, 귀, 배, 손, 팔, 발, 목, 등, 침, 똥까지 대개 한 글자이다. 한 글자를 거의 다 쓰고 나서 쓴 것이 두 글자일 것이다. 한글로 된 명사의 대부분은 두 글자이다. 다시 돌아가, 한글 이름짓기를 생각해보면, 이름에선 한 글자 명사들과 두 글자 명사들을 주로 활용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름이란 길어지면 부르기 번거로워지니까 말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원초적인 명사들인 한글자 소리들이 자주 채택된다. 원초적인지라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그러나 곧 바닥나게 되어 있다.
요즘은 마을 이름을 짓는 일이나 큰 건물과 공공시설의 이름을 짓는데 한글 이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참신해 보이기도 하고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다. 애국적인 기분도 돋아나고, 친근감도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 또한 잦아지면 작위적인 작명으로 나아가기 쉽고, 한글 이름이 부딪쳤던 그 한계를 다시 만나고 만다. 별빛마을 아파트와 새싹마을 아파트를 전국에서 보게되고 말 것이다. 네이밍이 스토리텔링이라고 인식했던 시절과 단순한 이미지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인식차이가 여기에 존재할 수도 있다. 한자어들은 축약을 활용한 스토리 싣기가 쉽다는 점. 옛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었고 십분 활용했다. 선유도는 신선들이 놀던 섬이란 뜻이다. 그 브랜드만으로도 이미 스토리다. 학소대는 학의 둥지가 있던 곳이며, 무심사는 마음을 텅 비워 부처처럼 해탈에 이르는 절을 이미 이름에 담고 있다. 우리 집에 걸려있는 숭정금실은 네 글자이지만 이것의 스토리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책 한 권을 써야할 지도 모른다. 추사의 삶에 관한 스토리는 물론이고, 조선의 역사와 외교관계(청나라와 명나라), 그리고 조선의 예술관과 지식인들의 취향까지 모두 섭렵해야 할 것이다.
밖엔 비가 추적거린다. 최치원은 이런 날 외국의 여관에 앉아 시를 읊었다. 세로소지음. 세상의 길에 내 말을 알아듣는 이 드물구나. 다섯 자로 표현한 저 말. 풀이한 저 말은 훨씬 더 길지만, 저것이 담고 있는 의미심장함은 영원을 울릴 만한 것이다. 저 단촐한 다섯 자가 영원을 울린다는 점을, 빗소리와 함께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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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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