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경제계를 휩싸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재정을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정부가 안간힘을 쓰는 형국이다.
그런데 사람의 한계는 뚜렷한 모양이다.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는 2003년 "공황을 예방하는 문제는 이제 해결됐다"고 선언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불과 5년 후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 체면을 구겼다. 물론 경제학자 자성도 있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 대학 교수는 "경제학자들은 과학자인 척하는 걸 좋아한다. 나도 종종 그러기 때문에 잘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경제학자들이 예측을 했지만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마치 도박처럼 모두가 '예스(yes)'라고 할 때 혼자 '노(no)'라고 외쳐 스타 경제학자가 된 사례도 빈번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인간의 경제적 판단과 행동이 항상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예측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역사에 터보엔진을 달아 준 1820년대 산업혁명이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인구는 기하급수로 늘고 농업생산량은 산술급수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류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외쳤던 맬서스의 '인구론'을 옹색하게 만들어버린 화학비료 발명 역시 마찬가지다. 화학비료 발명으로 농업생산량은 40년 새 9배나 급증했다. 1880년대에는 등유램프가 나오며 서민들이 칠흑같은 어둠을 벗어날 수 있었다. 1800년대 초반에는 무려 6시간 동안의 노동대가로 겨우 1시간 동안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수지양초를 살 수 있었다. 등유램프가 나온 후에는 15분의 노동대가만으로 1시간 동안 어두컴컴한 밤을 면하게 되면서 노동생산성이 올라갔다. 이 외에 반도체와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 정부의 도움이 있었을지언정 정부가 주체가 돼 경제적 혁신이나 혁명적 변화를 이룬 경우는 많지 않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제주체들이 맘껏 윷을 던질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다. '도'가 나오더라도 '모'가 나올 때까지 신나게 놀 수 있게 해야지, 대신 윷을 던져주는 게 아니란 말이다.
경제ㆍ사회적 폐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정부 지분 없는 민간금융사에 금리를 내려라 올려라 할 필요가 없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감사 등을 선임하는 데 '보이지 않는 손'을 얹지 말아야 한다. 산업계에 대한 지원과 규제도 엇박자가 나면 '클라인의 항아리' 신세로 전락한다. 이 항아리는 양 끝이 접속돼 있어 분명히 닫혀 있는데도 사실 열려 있다. 물을 부으면 모두 부질없이 흘러나간다.
박성호 금융부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