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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23. ‘조 블랙의 사랑’ 저승사자와 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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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 블랙의 사랑'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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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마틴 브레스트 감독이 만든 영화 '조 블랙의 사랑'은 저승사자 이야기다. 65세 생일을 맞은 언론사 경영자인 윌리엄 패리시(William Parrish)에게 문득 저승사자가 찾아온다. 방금 죽은 한 청년의 몸을 빌어입고 패리시에게 나타나 갈 때가 다 되었다고 일러준다. 저승사자는 브래드 피트가 연기를 했고, 패리시는 안서니 홉킨스이다. 이 저승사자는 당장 패리시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며칠간 이승에서 함께 생활을 하다가 데려가기로 되어 있다.

그 와중에 저승사자는 패리시의 딸 수잔과 사랑에 빠진다. 거참, 이런 운명의 장난도 있구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중요한 단서가 있는데, 저승사자가 마침 빌어입은 몸이, 수잔이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그 청년은 찻집에서 만난 수잔을 보고는 바로 사랑에 빠졌는데, 서로 이름도 알지 못한 채 헤어져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 저승사자가 그의 얼굴로 나타났기에, 청년이 죽은 사실을 모르는 수잔에게는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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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리시는 언론을 경영하는 CEO로서 열정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키워놓은 방송사를, 큰 네트워크 회사에서 합병하자고 제안이 왔다. 그는 언론을 장사로 이해하는 기업에 넘길 수는 없다고 단호히 거부했다. 이사회의 중요 임원이자 수잔과 친하게 지내던 드류(Drew)는 이 방침에 반발해서 합병을 다시 추진한다. 한편 저승사자는 패리시가 주재하는 이사회에까지 따라왔는데, 갑작스럽게 소개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조 블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조 블랙이 패리시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자 드류는 그가 누구냐고 따진다. 그의 조종을 받아,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내던지는 게 아니냐고 힐난한다. 이에 대해 패리시는, 조 블랙이 저승사자이며 얼마 뒤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고 밝히지는 못한다. 둘의 관계에 대해 얼버무리는 바람에 패리시의 입장이 더 곤란해졌고, 그 틈을 타서 드류는 이사회를 조종해 패리시를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게 하는 책략을 쓴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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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패리시는 이사회 멤버였던 사위의 고백을 받는다. 드류의 꼬임에 넘어가 장인을 밀어내는 것에 합의해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류가 합병 이후에 방송사를 잘게 분산해 되팔아서 큰 수익을 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제 저승사자가 패리시를 데려가야할 날의 아침이 왔다. 그날 패리시는 딸의 주선으로 65세 생일을 축하하는 큰 파티행사를 갖는다. 죽기 전에 그는 방송사의 해체 위기를 바로잡아놓고 가고 싶었다. 이사회를 몰래 소집해놓고, 파티가 열리는 집으로 드류를 불렀다. 이사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전화를 연결해놓고 드류와 대화를 한다. 그의 음모를 캐묻는 과정에서, 조 블랙이 불쑥 가세한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세무공무원이라고 소개한다. 언론사의 세무 비리를 추적하기 위해 패리시와 같이 다녔다고 설명한다. 합병과 관련해 몇 가지를 찾아냈다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에 드류는 그만 두 손을 들고 만다. 전화기 속으로 들려오는 소리로 상황을 파악한 이사회에선 드류를 해임하는 안건을 처리하고 다시 패리시를 대표로 추대키로 결정한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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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같은 이야기이다. 이토록 착하고 인간적인 저승사자가 찾아와 데려간다면 그것도 대단한 복일 것이다. 이 영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이는 까닭은, 드류를 쫓아내는 장면에서 조 블랙이 세무공무원 연기를 하는 상황이 재미있어서이다. "세리(稅吏)나 저승사자나 하는 일은 비슷하지 않느냐"고 중얼거리는 브래드 피트의 말은, 문득 웃음을 자아낸다. 성경에 나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세리에 대한 이미지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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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공무원의 금품 수수 비리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다. 국세청의 한 간부가 이 기사를 보고는 불만을 표시했다. 헤드라인을 '돈 먹은 세리(稅吏) 5년간 183명 징계'라고 달았는데, 표현이 자극적이고 감정적이라는 것이었다. 세리라는 말이 지닌 오래된 경멸을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은 잘 쓰지도 않는 말인데 굳이 찾아내서 쓰는 것은 신문의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이 신문이 국세청과 유감이 있는지, 그 이전의 기사들도 모두 다시 검색해 분석해보았다고도 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며, 불편한 심기에도 이해가 간다. 열심히 스스로의 업무에 매진하는 국세 공무원 전체에 대해 직업적인 모멸감을 줄 수 있는 용어를 쓴 것은 배려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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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세청의 흥분은 공직자로서의 겸손과 신중함이란 측면에선 걸맞지 않다. '세리'에 오래된 부정적인 뜻이 있는 것은, 그만큼 비리에 노출되기 쉽고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기 쉬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일을 저지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세무업무와 관련해 돈을 받은 공무원들을 비판하는 자리인만큼 민심의 분개를 담을 표현이 필요했다. 그들은 오래된 오명을 낳은 바로 그 행위를 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 헤드라인을 보면서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일보다, 저 언론이 우리한테 무슨 앙심이 있는 게 아니냐고 전력(前歷)을 들춰보는 건, 속 비좁은 적반하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금도 국민이 내는 것이지만 세리의 봉급도 결국 국민이 내주는 것 아니던가. 스스로의 적폐에 조금만 옷깃을 여미면, 결코 '세리' 호칭을 내놓고 불평할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텐데, 거참. 감히 저승사자가 국세공무원을 사칭하며 농락한 브래드 피트에겐 멱살이라도 잡으러 갈 판이네.
영화 '조 블랙의 사랑'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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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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