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행사의 여주인공 옷이 특별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약간 광택 있는 검은 색에, 발목까지 오는 민소매 원피스와 아이보리색 실크 노방의 볼레로(원피스 위에 입는 짧은 옷)차림이었다. 원피스는 힙부터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좁은 A라인으로, 몸의 곡선이 알맞게 드러났다. 볼레로는 허리선 길이의 박스형이었다. 긴 소매는 소매산에서 소매 단까지 길게 터져있고, 그 중간 부분을 한 땀 찝어서 움직일 때마다 팔의 맨살이 살짝 보였다. 가슴 아래로는 다아아몬드형 슬릿들이 타원형의 작은 인조 진주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노방의 고전적인 느낌과 현대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목에 건 여러 줄의 진주 목걸이와 빨간 구두가 무채색옷에 악센트를 주고 있었다. 고급스럽고 우아했다.
옷은 자기를 표현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수단이다. 과거 일부 특수층의 전유물이었던 패션이 자본주의와 민주화에 힘입어 대중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획일화된 유행의 틀에 가두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대중화된 패션을 누림과 동시에 차별화된 자기정체성(identity)을 찾아야하는 필요성에 당면하게 되었다.
자기 정체성 확립에는 여러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획기적인 스타일로 개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값비싼 명품들로 자기를 과시하기도 한다. 여유가 된다면 명품의 활용이 그중 쉬운 방법일수도 있다. 명품이란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하고 명인들이 만들어내며, 값이 비싸 아무나 소유할 수 없으므로 가장 확실한 차별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 족, 된장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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