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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메밀꽃 필 무렵' 흥행‥장기 상영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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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년 하고 꼬박 일곱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 중에서)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중략)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 하니 왜 먹지를 못 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좋은 날' 중에서)
"달밤에는 이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중략)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무렵' 중에서)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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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단편 소설 속 장면들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이에 관객의 호평이 이어진다. 바로 20대의 풋풋한 사랑을 노래한 김유정의 소설 '봄·봄', 40대의 처참했던 슬픔을 담은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60대의 아련한 추억이 깃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 한국 대표 단편소설을 그림으로 되살려낸 옴니버스 형태의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운수좋은 날·봄·봄'이다.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은 개봉된 지 일주일만에 누적 관람객 1만여명을 도달하며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통상 독립영화 시장에서 관객 1만명이 넘어설 경우 성공작으로 평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고무적인 수치다.

25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1일 개봉한 이 작품은 다양성 영화 주말 박스오피스 2위(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8월24일 기준)를 차지했다. 또한 포털사이트의 관객 평점 9.3~9.4점을 기록했다. 현재 상영관은 서울 13개관, 지방 37개관 등 총 40개관이다. 개봉 일주일간 누적 관객은 총 9804명으로 집계됐다.
흥행 요인과 관련, '슬프고, 고달프고, 한숨 짓게 하고, 눈물겹기'조차 한 여러 인생들과 대면, 관객들이 옛 자취들에서 위안을 받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번 작품은 원작에 충실한 연출과 공들인 작화가 한 몫 한다. 특히 메밀꽃 흐드러진 달밤, 비 내리는 경성 거리,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의 들판 등 소설 속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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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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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세편의 옴니버스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도돼 있다. 그러나 눈에 띠는 파격이나 기발한 재해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원작의 서정을 충실하게 화면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지난 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에 관객들은 "느리고 수수한 삶의 단편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원작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어 "학교에 배운 문학작품과는 영상으로 본 느낌이 색달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작품은 인터넷과 휴대폰에 중독된 디지털 세태에 대응, 아날로그적 정서로 문화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특히 스토리 빈곤 등에 시달리는 애니메이션 산업계에 소재 원형으로서의 가치를 일깨운 사례로 손꼽힌다.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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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작은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등을 내놓은 '연필로 영상하기'다. '소중한 날의 꿈'은 3년전부터 현재까지 독립영화관 등 40여개관에서 상영이 이뤄지고 있는 베스트셀러로 추정 누적 관객이 100만명에 이른다. 이번 작품은 기획·제작에 2년이 걸렸다. 일단 제작사는 대박 조짐을 보이자 내심 장기 상영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극장가도 영화 '명량' 등 사극 열풍속에서 애니메이션의 흥행에 놀라는 눈치다. 이에 상영관 수를 늘려야 한다는 관객의 요구도 거세다.
애니 '메밀꽃 필 무렵...'을 연출한 안재훈 감독

애니 '메밀꽃 필 무렵...'을 연출한 안재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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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을 담당한 안재훈 감독(45)는 "어려서부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소중한 날의 꿈 제작을 마치고 곧바로 제작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안 감독은 또 "현 추세는 소중한 날의 꿈 이상으로 장기 상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안 감독은 "문학이 잊혀지고, 문학 속 소중한 추억이 잊혀지는 것이 서운한 관객들이 이번 애니메이션을 찾는 것 같다. 이를 계기로 수많은 문학이 애니메이션으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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