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요즘 대포(?)가 너무 많아 큰 문제다. 이른바 3대 대포로 불리는 '대포차'와 '대포폰', '대포통장'이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실제 사용자와 명의자가 다른 3대 대포 물건을 줄이기 위해 집중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포 물건들이 지하 경제를 부추기고 흉악 범죄나 금융 사기에 악용돼 국민들의 안전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명계좌는 과거엔 기업 총수나 정치인들의 비자금과 정치 자금 조성, 탈세 목적 등에 사용돼 수사당국의 계좌추적이란 말과 함께 뉴스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몇 해 전부터는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에 악용되면서 어느 순간 대포통장이란 말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자극적인 단어를 좋아하는 언론과 독자들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고객의 돈을 몰래 이체하고 인출하는 과정에서 수사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통장을 사용하며, 고객들로부터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융당국은 신고인에게 최대 5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다양한 대포통장 근절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금융회사도 고객으로부터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를 받는 등 통장 개설 절차를 강화하고 있지만 개설 단계에서 대포통장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기에 이용된 대포통장을 확인해 보면, 새로 개설된 통장보다 정상 거래하던 헌 통장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구매하려는 수요자가 있는 한 공급자는 있게 마련이다.
첫째, 사기범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함께 통장 양도인에 대한 엄격한 형사처분이 필요하다. 사기 조직이 주로 해외에 은신해 있고 양도인은 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 수사와 처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전화나 문자의 발신 번호를 임의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사기 전화는 해외에서 걸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발신 번호가 공공기관으로 조작되기 때문에 쉽게 속는 경우가 많다.
셋째, 금융당국과 금융사는 통장 양도 행위가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불법 행위라는 것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아직도 일부 고객은 통장 양도의 불법성과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농협은행의 통장은 과거 대포통장에 많이 악용돼 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오명을 벗기 위해 농협은행은 지난 4월부터 대포통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개설 절차를 강화하는 등 고육지책(苦肉之策)을 펴왔다. 덕분에 지난 7월 금융권에서 발생한 대포통장 가운데 농협은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1%대로 뚝 떨어졌다.
과거 신분증만 있으면 5분 안에 통장을 만들었던 고객들은 다소 불편을 겪었을 것이다. 우리 직원들도 이를 이해시키느라 진땀 흘린 것도 잘 알고 있다. 은행장으로서 지면을 빌어 그동안 불편을 감내해 준 고객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직원들에게는 정말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김주하 NH농협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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