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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서재에서]내 디자인상상력의 원천은 무협소설

최종수정 2014.07.09 08:13 기사입력 2014.07.0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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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의 '사람읽기' 인터뷰-디자이너 이상봉

지금도 생각 막힐 땐 밤새워 독서, 서재가 내 아이디어뱅크



윤승용 논설고문(얼굴)의 '리더의 서재에서'는 CEO와 경제지식인들의 지적보고(知的寶庫)를 탐방해 깊이있는 성찰의 결과들을 함께 음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윤 고문은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국방홍보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으며 저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패션계의 전설이 돼버린 고(故) 앙드레 김의 뒤를 이어 명실상부한 제2세대 패션세계를 열어젖힌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의 꿈은 당초 문학도였다. 드라마작가를 꿈꾸며 대학에 진학했으나 정작 연극에 꽂혀 가난한 연극인의 길을 걸으려다 뜻하지 않게 발을 디딘 패션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한국적인 디자이너'로 유럽 무대에 알려진 그가 의외로 책벌레라는 사실은 업계에선 이미 구문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인기 북코너인 '지식인의 서재'에 쟁쟁한 학자들 틈에 26번째로 소개될 정도로 그의 책과 지식에 대한 식욕은 끝이 없다. 1980년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해 1985년 패션의 중심지인 명동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상봉 부티크'라는 매장을 연 이래 그는 현재까지 150회가 넘는 국내외 패션쇼를 진행했으며 한글을 접목한 한글패션으로 국내외적인 주목을 받았다. 패션 디자이너 단체인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은 그는 지난달 파리에 이어 뉴욕으로까지 진출, 2014 FW 뉴욕패션위크를 통해 첫 단독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스페인 마오마오 출판사가 펴낸 '아틀라스 오브 패션 디자이너' 아트북에 아시아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세계 60대 디자이너로 뽑힌 이상봉. 시원한 민머리에 동그란 뿔테안경, 검은 망토와 수염으로 이미 자신만의 이미지 브랜드를 성역화한 그를 서울 역삼동 갤러리에서 만났다.
-당초 대학시절 연극인을 꿈꾸다 패션디자이너로 선회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릴 적부터 무척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책을 가까이하며 외톨이처럼 지냈는데 대학은 드라마작가가 되고 싶어 방송연예과로 진학했지요. 그런데 동급생 40명 중 작가 지망생은 9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연기자 지망생들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이들과 어울리다 그만 연극의 맛에 푹 빠져버렸지요. 하지만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장남인 나로서는 '배고픈 연극배우'의 낭만은 사치였습니다. 결국 첫 공연 1주일여를 남겨두고 도망치듯 공연장을 빠져나왔지요. 그러다가 옷 수선집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수선을 잘하면 먹고살 수 있다는 말에 신문광고를 보고 무작정 국제복장학원을 찾아갔습니다. 그 학원과의 만남이 내 운명을 디자이너의 길로 안내한 셈입니다.

-학창시절에는 주로 무슨 책을 보았는지요.
▲골방에 틀어박혀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초등학생 때는 만화책에 미쳤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유별나게 무협지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읽었던 무협지에서 느꼈던 의협심과 도전정신, 광활한 대륙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이 지금도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작품의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는지요.
▲보통 여행이나 영화, 문학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잘 안 풀릴 때면 결국 서재에 틀어박혀 몇 날 밤을 새워 가며 책을 봅니다. 서재는 나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지이기도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주기도 하기 때문에 아이디어 뱅크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최후에 매달리는 보루이지요.

-스케줄이 바쁘던데 어떻게 짬을 내 책을 보시는지요.
▲제 서재에서 아침저녁으로 전문서적 보는 것 이외에 교양서적이나 소설, 시처럼 가벼운 책은 잠자리에서 쌓아 놓고 보게 되죠. 그래서 제 침대 옆에는 항상 책이 계속 쌓여 있습니다. 하지만 직업상 여행을 자주 하기 때문에 그 이동시간을 잘 활용합니다. 일단 여행 가서는 책을 꼭 봐요. 여행 갈 때, 출장 갈 때 항상 공항 서점에서 책 몇 권을 사죠. 그래서 비행기에서, 외국에서 시차 때문에 잠 못 이룰 때에는 책을 보고는 합니다.

-한글을 디자인에 원용해 주목을 받았는데, 그 계기는요.
▲제가 1985년도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적인 요소를 서양의 것과 결합하여 내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나만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게 끊임없는 과제였는데 파리라는 외국에서 쇼를 하다 보니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인 한글을 생각하게 됐고, 한국 디자이너로서 우리의 문화 아이콘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나는 외국인들도 한글을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모르는 거예요. 심지어는 저랑 수년간 같이 작업을 한 스태프들마저도. 그때 충격을 받았죠. 한글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건데, 세계 속에서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더라는 겁니다. 저는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시작했는데 막상 일을 해 보니 한글의 미학적 요소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는 모던한 분위기까지 알게 됐지요.

-의상 디자인뿐 아니라 스마트폰, 담뱃갑 디자인까지 하는 등 보폭을 넓혀가고 있던데요.
▲2008년 금호건설의 주상복합아파트 브랜드인 '어울림'과 '리첸시아'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한 것이 시초입니다. 이후 해외수출용 담배 에세의 담뱃갑과 LG스마트폰 디자인에도 참여했지요. 2009년에는 피겨여왕 김연아의 아이스쇼 의상 디자인을 맡았었는데 그때 김연아의 프로정신에 감탄했습니다. 2012년에는 우체국 집배원들 유니폼도 디자인했습니다. 또한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탁구대표팀의 디자인도 제가 했습니다.

-지난해 낸 책 '패션은 패션이다', 즉 패션은 열정이라는 뜻이겠는데 참 절묘합니다. 이 책의 골자는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패션은 열정이라는 얘기을 주로 담았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창조의 고통이 항상 함께하는 패션은 열정 없이는 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 패션계의 대모라 할 최경자 여사님입니다. 100년 전에 태어나 개화기 여성으로 평생 디자이너로 살다가 2010년 99세로 영면하셨는데 최 선생님은 한국 패션을 사실상 일으켜세우신 패션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저는 국제복장학원을 졸업한 후 최 선생님이 운영하는 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에서 심층적인 공부를 했는데 정말 그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디자이너로서의 남은 꿈이 있다면.
▲앞으로의 꿈이라면…. 이제 파리에서는 이상봉이라는 브랜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미국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처음 컬렉션을 열었는데 후배들의 앞길을 위해서라도 제가 패션 선진국에서 제 몫을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말 멋지게 외국 브랜드처럼 '이상봉'이라는 브랜드를, 멋진 후배에게 쇼를 하게끔 열어주는 첫 스타트를 해보고 싶은 게 제 욕심입니다.

◆이상봉의 읽어보니, 좋던데요

◆빅 픽쳐(더글라스 케네디ㆍ밝은세상)= 북아프리카에 패션 심사하러 갔다가 읽었던 책.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꿈꿔 왔던 젊은 날을 회상했는데, 손에서 놓지 못했다. 시종일관 책 속에서 주인공들과 그 사람들의 인생을 책 한 권으로 동행했다고 할까. 내가 한때 많은 꿈을 꿨었는데, 내가 그 길을 갔다면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또 다른 나의 갈 길은 있을까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됐다.

◆은교(박범신ㆍ문학동네)= 인도네시아 여행을 하면서 읽은 책. 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하얀 백사장에 뜨거운 햇살이 보석처럼 눈부시던 그곳에서 살이 익는지도 모르고 읽었다. 은교라는 소녀를 통해 나이가 많은 작가와의 사랑,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책. 아무래도 저도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에 더 많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보는 지혜(뤼신우ㆍ아침나라)= 중학생부터 혹은 성인이 돼 세상이 힘들 때 찾아볼 수 있는 책, 인생의 동반자 같은 책. 지혜를 주기도 하고, 정말 힘들 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책. 세상을 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갈 수 있는 길을 아는 것인데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고, 언제든지 가까이 둘 수 있는 친구 같은 책인 것 같다. 정말 밑줄 그으면서 읽은 책, 그러면서까지 기억하고 싶은 책.

◆페이터의 산문(월터 페이터ㆍ범우사)= 불면증 때문에 잠을 뒤척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옆에 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읽는 책.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지는 기분이 든다.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아름다운 글들이 정말 가득하다. 어떤 특정한 지식을 얻는 책이라기보다는 사상의 조화를 통해 영혼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풍만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이상봉 디자이너 약력

▲서울생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 졸
▲1985년 (주)Lie Sang Bong Paris 설립
▲1994년~현재 서울 컬렉션(SFW-SEOUL FASHION WEEK/SFAA-Seoul Fashion Artist Association)
▲2002년~현재 프랑스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2008년 서울 디자인 올림픽 홍보대사
▲2009년 '올해의 디자이너' 대통령 표창
▲2011년~현재 콘셉트코리아 컬렉션, 뉴욕 프레젠테이션 및 전시
▲2012년~현재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CFDK) 초대 회장 


윤승용 논설위원 yoon673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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