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연정하면 흔히들 'DJP 연합'을 떠올린다. 15대 대선 승리로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총리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2010년 김두관 경남지사의 연합정부도 있다. 하지만 'DJP 연합'이나 김 지사의 사례는 지금 당선인들의 움직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상대진영과 손을 잡은 연정이라기보다는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적 공조의 성격이 짙다.
대척점에 선 세력 간의 연정을 말하려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여야 간 연정을 시도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그 상대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2005년 7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열린우리당+한나라당'의 '대연정'을 제안했다. 한나라당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받아주면 총리를 내주는 등 대통령 권력을 내각제 수준으로 이양하겠다는 파격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8월1일 기자회견을 통해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한마디로 잘랐다. 그러고는 "민생경제를 살리는 일에나 전념하라"고 면박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래도 굽히지 않았다. 논란은 한동안 이어졌다. 9월7일 청와대 회담에서 담판이 났다.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은 지역구도를 극복하자는 취지"라며 '초당적 거국 내각 구성'을 다시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노선이 달라 함께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노 전 대통령의 연정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왜일까. 그때의 정국상황을 보면 답이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국정수행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할 만큼 상황은 노무현 정부에 험난했다. 우리당은 그해 '4ㆍ30 재보궐선거'에서 0대23으로 참패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29%'였다. 야대(野大) 국회에서 노무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대통령이 의욕을 보인 국가보안법, 사학법 등 4대 법안 처리는 벽에 부딪혔다.
노 전 대통령은 연정을 말하면서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정치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국정운영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얕은 술수로 폄하했다. 인식 차가 너무 컸다. 실패는 애초 자명했다.
공교로운 건 박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노 전 대통령 때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6ㆍ4 지방선거'를 선방했지만 세월호 참사에 총리 후보 등 부적절한 인사 논란이 겹치면서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다. 여권 전체에 위기론이 번질 정도다. 게다가 국가개조를 위한 정부조직 개편안도, 창조경제를 뒷받침할 법안들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여대(與大)지만 국회 선진화법으로 야당의 협조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거의 없다. 야당의 '연정을 제안하라'는 요구, 박 대통령 심사가 어떨까….
어경선 논설위원 euh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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