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고 관직도 바뀌며 복잡해졌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국민들이 공직에 나선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바람'일 것이다. 올바르게, 그리고 민초들을 위해 일해주길 바라는 그 '바람' 말이다.
조선 왕조에서는 의복제도가 더욱 세분화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조복(朝服:경축일, 설날 등에 입음)은 적색(赤色), 공복(公服:공무시, 또는 외국 사신을 맞을 때)은 홍(紅:정3품 당상관), 청(靑:종3품-6품), 록(綠:7-9품)의 3색이었다. 상복(常服:평상 집무시) 역시 정3품까지만 홍색(紅色)이었다. 이 제도가 조선 500년 동안 그대로 계속된 것은 아니나 조선왕조 말에 이르러 흑색(黑色)으로 바뀌기까지 최상위 관리의 옷 색은 눈에 확연히 띄는 붉은색 계통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오늘날의 행정 직책과 조선시대의 직급을 비교할 때, 국무총리는 정1품(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다. 각부장관(6조판서)과 서울시장(한성판윤)은 정2품이고, 도지사(관찰사)와 광역시장은 종2품에 해당된다. 정3품은 일반시의 시장(목사: 관찰사 밑에서 고을을 다스리는 벼슬아치) 등 기초 단체장 정도로 비교되고 있다. 말하자면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제외하면, 정3품 이상으로 홍색 옷을 입을 수 있는 높은 벼슬아치들을 뽑은 셈이다.
붉은 색을 입은 관리는 그 직책이 높아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관리는 백성들 위에 군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까.
다산(茶山) 정약용은 '원목'과 '탕론'이라는 논문에서, 요약컨대 목(牧:통치자)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이장(里長)에서 천자까지 백성들이 밀어주지 않으면 될 수 없는 벼슬이다. 따라서 천자가 대중의 의사와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그를 추대한 백성이 끌어내릴 수도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본다는 이론을 일찍이 편바 있다.
모름지기 고위직을 받은 선출자들이 옛날처럼 눈에 확 띄는 붉은 옷을 입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확연히 들여다보이는 오늘날, 정3품 이상의 벼슬에 올랐다고 자만하지 말고 진정 백성을 위해 노력 해주었으면 한다. 그건 의무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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